‘가난하다고 꿈조차  가난할 수는 없다’를 읽고

작년 여름 이곳 거제에 온 이후 난 이런 촌에서 조용히 나의 일을 하며 지내고 싶었다. 도전보단 안정을 그래서 치열한 삶보단 평안한 삶을 추구하는 게 나의 삶의 목표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나의 마음엔 처음과는 다른 뭔가 알 수 없는 힘이 요동치려고 했다. 이렇게 나의 젊은 시절을 보낼 수는 없다는 강한 욕구가 솟구쳐 오른 것이다.

대학생까진 나의 삶의 태도는 다소 적극적이요 도전적이었다. 수능이라는 걸 앞두고는 전국 1%안에 드는게 나의 목표였고 대학생이 되어서는 논문 공모전이 있으면 어디든 응모해 보는게 나의 일상이었다.

물론, 그렇게 한다고 모든 결과가 다 좋은 건 아니었고 오히려 절망스러운 일이 더 많았다. 특히, 기억에 남는 건 수능이다. 모의고사에서 늘 상위클라스에 든 나는 이 수능에서 나의 모든 것을 걸리라 다짐하던 차였다.

사실 그 시절에 모든 대한민국 수험생이 그러하듯, 다른 뭔가는 생각할 여유조차 없었고 오직 수능을 통한 입신양명이 삶의 목표가 되었던 셈이다. 결과는 여지없이 낙방이었다. 미끄러져도 그렇게 어이없게 미끄러질 수 없건만, 하늘은 무심하게도 나의 목표를 여지없이 흔들어 버렸다.

그 날 이후로 난 과도한 경쟁은 회피하려는 습성이 들어버렸다. 되도록이면 적당한 선에서 끝내겠다는 철학이 머릿속에 박혀져 있었다. 그리고 군대를 거쳐 더욱 그 생각은 굳어지고 다시 직장을 잡은 지금에 이르기까지 줄곧 내 생활패턴은 변하지 않았다.

학교도서관에 비치되어 있는 많은 책들 속에서 이 책이 유독 내 눈에 뜨인 건 올 여름방학 기간이었다. 도서관 현대화 사업을 추진 중에 있어서 도서구입이 한창 진행되던 차라 신간도서는 어렵지 않게 접할 수가 있었는데 이 책 표지가 내 눈길을 끌었다.

“가난하다고 꿈조차 가난할 수는 없다” 참 맞는 말이다. 이 주인공 김현근은 가정배경이 그리 좋지 못한 환경 속에서 과학영재학교를 거쳐 미국 프린스턴 대학에 입학하게 된다.

예전엔 개천에서 용 난다는 속담이 심심찮게 발견되곤 했지만, 부익부 빈익빈이 교육에서 조차 일어나는 현재의 시점에선 이런 사례가 돋보이는 게 사실이다. 그리고 나의 안일한 사고방식에 일침을 가했다고나 할까.

이 친구는 나보다도 어려운 환경에서 공부를 했고 민족사관고에 낙방하는 고배를 마셨어도 결코 꿈을 향한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더더욱 자신을 채찍찔하고 오히려 과학영재학교에 들어간 것이 자신에겐 행운이라고 생각한 사나이였다. 나는 실패에 삶의 태도가 바뀌어버렸는데 그는 그것을 기회로 삼았다.

이건 처음엔 그 차이가 얼마 나지 않겠지만, 그의 책을 읽는 중에 나와 그 격차가 엄청 벌어 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왜 이토록 이 친구와 비교하고 있을까라고 스스로 자문해 보기도 했는데 그 이유는 의외로 간단했다.

이 친구는 나와 의외로 공부하는 스타일이 비슷했다. 노력하면 안 될 게 없다는 신념으로 공부에 임했고 잘 모르면 암기를 해서라도 시험에 임하려는 그 모습이 나와 유사하였다.

결과를 놓고 봤을 때는 이 친구는 분명 나보다 성공한 위치에 있지만, 이 친구의 공부자세는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나의 학습 욕구를 일깨워 주었다.

경시대회를 준비하면서 과학영재학교에 다니면서 그가 느낀 건 세상엔 정말 굉장한 사람들이 많다는 거지만 그 굉장한 사람들이 처음부터 그렇게 된 건 아니라는 사실이다. 노력에 노력을 더해 지금의 그 위치에 있을 수 있다는 건 만고불변의 진리요 지은이가 몸소 터득한 깨달음이었다.

이 책이 비단 공부하는 사람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닐 것이다. 나같이 현실에 안주하고 벌써부터 안정적인 것에 정착하려는 자에게 일침을 가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나보다 나이가 어린 이 친구를 한번도 본 적이 없지만 내 인생의 스승으로 삼아도 별 무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그는 실패라는 것에 무릎을 꿇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자격은 충분히 있다고 본다. 또 하나, 이 친구의 어머니가 존경스럽다. 이런 위치에 있기까지 참으로 믿음으로 보살펴준 그 어머니의 힘이 위대하게 느껴졌다.

과학영재학교에서의 과도한 경쟁체제는 중학교 때까지 전교1등을 해온 학생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따라서, 그 학생들 속에도 순위는 어김없이 매겨져 첫 성적표를 받아본 지은이역시 큰 좌절감에 빠진다.

그때, 어머니가 보내어 준 한 통의 편지가 지은이에겐 큰 힘이 되었다고 한다. 나 역시 별 사고 없이 이렇게 지내고 있는 건 나의 어머니의 희생이 컸었다. 이 세상엔 공짜라는 건 없다. 노력 없이 뭔가를 바란다는 건 어쩌면 도둑심보가 아닐까.

흔히 말하는 그 운이라는 것도 준비하는 자에게 오는 옵션이 아닐까란 생각이 이 책을 읽는 내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분명 그는 누구보다 노력을 했고 자기의 가난을 오히려 역이용할 줄 아는 의지의 한국인이었다. 이런 학생이 우리 학교에도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난 교사도 아니고 교육자도 아니지만 좋은 책 하나가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 지 지은이를 통해 알 수 있었다. 그는 어린 시절 홍정욱씨의 “7막 7장”이란 책에 매료되어 미국유학의 꿈을 품고 실행해 나갔다.

링컨이란 위대한 인물도 스토어 부인의 “톰 아저씨의 오두막집”을 읽고 노예해방의 대업이란 꿈을 키웠다.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나 역시 다시 꿈을 설정하고 나가야겠다.

나를 둘러싼 환경이 가난한 것은 용서할 수 있어도 마음까지 가난하란 법은 없다. 어린 시절 즐겨 암송한 신경림 시인의 어느 한시가 문득 떠오른다.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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