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개장터에서 쌍계사 앞을 지나 한 20리쯤 길 따라 올라가면 칠불암(七佛庵)이란 절이 나온다. 김수로왕의 일곱 아들들이 이곳에 출가하여 불도을 이루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여기에 아자방(亞字房)이라는 당호를 가진 절집이 있다. 신라 효공왕 때 담공선사가 축조한 대선방으로 방의 형상이 버금아자(亞) 형식으로 되어 있으며, 이 방의 특징은 한 번 방이 덥혀지면 석 달 열흘 동안 불을 때지 않아도 방아에 훈기가 살아지지 않고, 방안 어느 곳에 앉아 있어도 같은 온기를 느끼는 이중온돌구조로 되어 있다. 불행하게도 한국전쟁 때 잿더미가 된 것을 복원했다.

온돌은 고래를 만들어 고래 위에 구들장을 놓고 아궁이에 불을 때서 구들장을 덥히는 난방장치로 구당서(舊唐書) 고구려전에 「겨울철에는 긴 구덩이를 만들어 불을 때어 따뜻하게 하였다.(冬月皆作長? 下燃溫火以取煖)」라는 것으로 보아 이미 7세기 초 고구려 민가에 널리 사용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구조로 전국적으로 보급된 것은 13~14세기 경인 고려말기라고 보고 있다.

서양식 난방은 벽난로로 열효율이 겨우 20~30%인데 비하여 온돌은 아침 저녁으로만 불을 때도 거의 15도 정도의 열을 하루 종일 보존할 수 있어 사람이 살기에 매우 이상적이다.

불을 지피는 쪽이 아궁이인데 아궁이에서 불길이 넘어가는 둔덕을 부넘기(부넹기, 불고개)라 하고, 부넘기를 넘어간 불기 먹은 연기가 방고래를 타고 지나면서 따뜻한 열기는 구들장에게 넘겨주고 연기만 굴뚝을 빠져 나간다. 굴뚝과 연결된 부분에도 개자리라는 것을 만들어 열이 바깥으로 빼앗기는 것을 막는다. 온돌의 과학은 바로 부넘기와 개자리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발해의 영토가 러시아 연해주 중북부까지 광범위하게 펼쳐져 있었다는 새로운 주장이 나왔다. 이번 유적지 발굴에서 발해의 전형적인 온돌시설을 갖춘 대규모 건물터가 발견되었는데 이 온돌유적 때문에 발해의 땅으로 주장할 수 있게 된 것이다.(san109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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