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현지 사료상 남아있는 임진란 유물 찾아 기행

일본 젊은이들, 이순신 장군 거북선 학교서 배웠다

경남 거제시 하청면 칠천도 인근 해역에 320만 경남도민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이순신 프로젝트 ‘거북선을 찾아라’ 그 1%의 가능성에 경남도민들이 도전장을 냈기 때문이다.
지난 6월2일 거북선 찾기 대장정에 돌입한 경남도는 오는 2015년까지 3단계로 나누어 이 사업을 추진, 거북선을 비롯한 판옥선, 천자총통 등 당시 유물을 찾아내 우리의 역사를 고증하고 선조들이 남긴 유물을 후손들에게 남기겠다는 각오다.
본지는 남해안 시대와 거북선 탐사, 칠천량 해전을 통해 고찰한 거북선, 역사적 사료와 향토 전문가들이 말하는 거북선의 역사, 거북선 발굴과 관광거제의 미래 등을 4회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
전리품(戰利品)으로 가져간 거북선은 없을까
▲ 일본 혼묘지에 소장된 이순신 장군 친필
네비게이션에 의존한 일본 취재일정은 실수였다. 거리상으로는 두 시간 남짓한 거리(170㎞정도) 후쿠오카 ‘하카타’항에서 사가현 ‘나고야성(名護屋城)’ 박물관을 찾아가는데는 꼬박 4시간45분이 걸렸다.

일제 네비게이션이 취재진을 안내한 길은 내내 차 한 대 겨우 지나갈 꼬불꼬불 산길이었다. 박물관 도착 시간은 셔터를 내리는 시간(4시50분)을 25분 경과한 오후5시15분이었지만 미리 전화를 해 놓은 덕분에 예정된 취재가 가능했다.

임진란을 승리로 이끈 왜군이 혹시나 전리품(戰利品)으로 가져갔을 거북선이 일본 어디엔가 있지 않을까?, 실낱같은 기대감은 기자의 너무나 큰 욕심이었다. 나고야성 박물관 관계자들과 인터뷰를 마친 후 전리품, 거북선에 걸었던 부푼 가슴은 한꺼번에 바람이 빠지기 시작했다.

일본의 어느 군사전문 기관이나 수많은 전쟁사 유물을 보관한 박물관에도 이곳보다 더 낳은 거북선의 자료는 없을 것이라는 관계자들의 설명에서 전신의 힘이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

임진왜란이 끝난 지 411년, 일본엔 거북선의 실체는 없다. 더구나 경남도의 거북선 발굴 노력도 아직까지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거북선은 오리무중(五里霧中)이다.

이제 어쩔 수 없이 우리는 거북선을 찾으려는 발길을 남해안으로 옮겨 우리의 눈과 귀를 더욱 크게 열고 마음 또한 이곳에 집중해야 할 성 싶다.

▲ 일본 후쿠오카 사가현 ‘나고야성 박물관’에 나란히 전시돼 있는 10:1 크기의 거북선 모형과 왜선 아타케부네.

일본 속의 ‘거북선’  

일본 후쿠오카(FUKUOKA) 사가현(佐賀縣) 나고야성(名護屋城) 박물관 2층 전시실에는 ‘거북선’과 왜선 ‘아타케부네(安宅船)’의 모형이 나란히 자리 잡고 있다. 거북선 모형은 1993년 제작한 것으로 총연장 36m의 거북선을 10분의 1로 축소했고 그 아래에는 다음과 같은 설명을 붙였다. 

「임진, 정유왜란 때 사용된 조선수군의 자랑, 바다에서 일본과의 전투시 크게 활약하여 조선수군을 승리로 이끌었다. 이순신장군이 창작했다고 전해진다. 배의 윗면에 거북이의 등과 같이 철판을 덮고 그 위에 적의 병사가 올라타지 못하도록 뾰족한 철을 세웠다. 대포도 많이 장비하고 있다. 이모형은 이충무공전집의 거북선을 기초로 한국에서 복원, 제작한 것이다.」

또 거북선 옆에는 전체길이 38m에 이르는 왜선 아타케부네(安宅船)를 10분의 1로 축소한 모형이 나란히 전시돼 있고 다음과 같은 설명이 붙어있다.

「임진 정유왜란 때 사용된 일본수군 최강의 준선, 갑판위에 성과 같은 건물이 설치되어 삼엄한 수비와 위용을 자랑한다. 전투시에는 배 둘레의 구멍으로 총을 발사하고 적의 군선에 병사들이 올라 타 싸웠다. 이 모형은 당시 나고야성의 모습을 담은 히젠나고야성도 병풍에 그려진 아타케부네를 기초로 복원, 복제한 것이다.」

일본 사람들이 왜 이곳에 ‘거북선’과 ‘아타케부네’를 나란히 전시했는지 그 까닭은 알 수 없다. 다만 이곳에는 이순신 장군의 초상화와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초상화, 나고야성 병풍도를 비롯 복제품의 대포 화승총 조선시서덕리(朝鮮詩書德利) 술병 등 일부 유물들이 전시돼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곳 사가현 나고야성은 1592년부터 1598년까지 한반도와 일본열도의 교류를 단절시킨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의 무대며 바로 군사들의 출병기지가 되기도 했다는 기록을 남기고 있어 임진왜란과 거북선을 연계한 한국 언론사의 취재 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 나고야성 박물관에 전시된 거북선(사진왼쪽)과 왜선 그림

거북선 자료, 일본에선 기대할 수 없는가

일본 쿠마모토시 쿠마모토성(熊本城)과 이곳 서북쪽 나카오야마에 자리 잡은 혼묘지(本妙寺)에도 임진란과 이순신 장군 관련, 유물이 있다는 현지인들의 제보에 일본 일정 이틀째, 취재진은 우선 쿠마모토성으로 향했다.

일본 3대 명성 중의 하나인 쿠마모토성에는 임란 때의 유물인 화승총(火?銃), 병사들의 투구와 갑옷 등 임란 때의 유물 일부와 석기시대 유물 등이 전시돼 있을 뿐, 우리가 간절히 소원했던 거북선의 실체나 우리가 찾는 정확한 사료(史料)는 없었다.

임진왜란이라고 하면 흔히들 1592년부터 7년간, 왜군과의 전쟁을 말한다. 그러나 임진왜란은 사실 5년에 불과하다. 임진왜란 7년이란, 1597년 정유년 가토히데요시(加藤淸正)의 재침명령에 의해 시작된 정유재란 2년을 포함한 것이다.

하지만 쿠마모토성에는 우리가 흔히들 말하는 임진왜란 7년의 역사는 제대로 기록해 두지 않았다.   

▲ 이순신 장군의 친필이 있는 곳 '혼묘지'

이순신 장군의 친필 있는 곳 ‘혼묘지(本妙寺)’

혼묘지는 쿠마모토의 신으로까지 추앙받고 있는 가등청정(加藤?正:가토기요마사)이 자신의 아버지 위패를 안치하고 명복을 빌기 위해 지은 사찰이다.  

쿠마모토 사람들에게는 성지와 같은 곳이기도 한 이곳 혼묘지에는 우리들의 눈길을 고정시킬 수밖에 없는 또 하나의 유물이 자리하고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이순신 장군의 친필 칠언시다.

「광대한 산하를 그린 훌륭한 그림이 완성되었다. 맑게 갠 하늘도 조용히 서 있는 나무들도 정숙한 풍취로 그려져 있어 새들이 우는 소리도 들리지 않는 것 같다」는 내용의 칠언시는 어떤 경로로 이곳까지 왔는지 정확한 기록은 없다.

이밖에도 이곳에는 임진왜란 때 의병 승병을 이끌며 왜군들을 공포로 볼았던 ‘사명대사’의 친필과 함경도에서 기요마사에게 인지로 잡혔던 조선의 왕자 ‘임해군’과 ‘순화군’의 친필도 보관돼 있다는 관리자의 설명만 있었을 뿐 거북선에 관한 자료는 전무했다.

▲ 현지인들에게 이순신 장군과 거북선에 때해 취재하는 기획취재팀

불멸의 이순신, 영원히 살아있는 거북선

50대 이상 일본인들은 대부분 이순신 장군이나 거북선에 대해서 잘 모른다. 그러나 30대 중반 이하의 젊은이들은 역사 속의 거북선, 성웅 이순신을 알고 있다. 그들의 역사책에서 배운 것이다.

30대(4명)와 40대(4명)와 50대(3명) 그리고 60대(4명) 등 15명의 일본인들과 인터뷰를 가진 결과 하마사키씨(52·주차장 관리인)와 타나카씨(67·주유원) 등 대부분의 노년층 사람들은 임진왜란이나 이순신 장군, 거북선에 대해서 잘 모른다고 답했다. 

그러나 사이타마현에서 관광차 쿠마모토시를 찾았다는 타마가씨(27·회사원) 등 젊은 층 사람들은  “한국의 이순신은 훌륭한 장군이었고 거북선은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원동력이 된 군선이었던 것으로 고등학교 역사책을 통해 배웠다”고 말했다.

자신의 이름을 ‘히데꼬’라고 밝힌 34세의 여성은 “조선의 군선이었던 거북선은 이순신이라는 장군이 만든 것으로 안다”며 “전투에서는 돌격선으로 나서 적진을 헤집고 다니는 무적의 군선이었다”고 말했다.

23전 전승의 신화를 남긴 성웅 이순신, 그의 구국일념(救國一念)과 거침이 없던 거북선의 활약은 우리들 뿐 만아니라 일본인 그들의 가슴에까지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길로 남아있는 것이다.

▲ 임진란의 주역인 가토기요마사의 구마모토성

거북선의 실체는 어디에

혹자는 일본 어디엔가 거북선이 보관돼 있을 것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왜군이 유일하게 승리를 거둔 해전인 칠천량 해전에서 그처럼 훌륭한 조선의 군선, 거북선을 그냥 내버려 두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견해며 적어도 한 두 척 정도는 전리품으로 가져갔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때문에 국가 차원에서 협의는 물론, 일본의 방위청을 비롯, 군사전문기관, 군사전문 학교 등에 대한 정보 입수가 우선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임진왜란 종식, 411년이 흐른 지금까지 일본이 거북선 관련 자료 등을 공개하지 않는 것은 더 이상 자료가 없다는 증거라고 주장하고 있다.

더구나 임진왜란 때 거북선 때문에 엄청난 수난 겪은 그들이 치욕의 산물을 남겨두지 않았을 것이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이 같은 상황을 종합할 경우지금 육지에선 더 이상 거북선 관련 자료를 기대하기가 힘든 상황이다. 때문에 남해안 뻘 층 어디에선가 우리의 희망, 거북선이 살며시 모습을 드러내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간절히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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