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일광 시인/거제문화원장
윤일광 시인/거제문화원장

신라의 21대 소지왕 때 일이다. 정월 보름날 경주 남산 천천정(天泉亭)에서 산책하는데 까마귀가 왕을 보고 계속 울었다. 이상하게 여겨 신하에게 까마귀를 따라가 보라고 시켰다. 신하가 연못에 이르자 물속에서 백발노인이 나타나 봉투를 주면서 "열어보면 두 사람이 죽고 보지 않으면 한사람이 죽는다"하고는 사라졌다.

일관이 "둘은 일반사람을 말하고, 한 사람은 왕을 뜻하니 편지를 읽으소서"하고 권했다. 편지에는 '사금갑(射琴匣)'이라 적혀 있었다. '거문고집을 쏘아라'는 뜻이다. 궁으로 돌아온 왕은 활로 거문고 집을 쏘았더니 그 안에는 왕후와 내통한 승려가 왕을 시해하려고 숨어 있었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설화이다.

소지왕은 까마귀에게 보답하기 위해 정월 보름날을 '오기일(烏忌日)'이라 명명하고, 해마다 약밥(약식)을 지어 제사를 지냈다. 민간에서는 오곡밥을 나물과 함께 담이나 장독대 위에 얹어 놓아 까마귀가 먹도록 했다. 이를 '까마귀밥 차린다'고 한다. 대보름날 오곡밥은 까마귀가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몰라서 차리는 뷔페 음식이다.

대보름날 까마귀에게는 밥을 주지만 집에서 기르는 개는 14일 저녁부터 15일 저녁까지 매어놓고 굶겼다. 보름날 개에게 밥을 주면 체한다거나, 여름철 집안에 파리가 많이 꼬인다거나, 일 년 내내 개가 살이 오르지 않고 빼빼 마른다는 속설이 있다. 어떤 이는 까마귀밥을 개가 먹지 못하게 매어둔다고 했다.

명절이나 잔칫날에 제대로 먹지 못하는 사람을 일컬어 '개 보름 쇠듯 한다'는 속담이 여기서 생겼다. 저녁에 달이 뜨고 난 뒤에야 개에게 밥을 주면서 "개파리 쓸자"라며 개의 등을 빗자루로 쓸어준다.

'대보름에 개밥 주는 여자는 복이 없다'는 말이 있다. 우리 설화에 달이 기우는 것은 불개가 달을 잡아먹기 때문인데, 달과 상극인 개에게 먹이를 주면 여성의 음력을 빼앗긴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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