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란당시 성병, 난민진료 등 보건행정 앞장
당시 규모 50병상, 최신의료기기도입 의료체제 완벽
종전 후 '기념분원'으로 남겨 지역의료봉사에 일익

창간 34주년을 기념해 1989년 창간호부터 인터넷신문이 없었던 2006년 5월까지 보도된 기사(지역역사) 중 독자들의 관심이 높았고 중요한 기사를 인터넷에 업로드합니다. 이는 과거와 현재를 이어 거제지역 발전을 위한 역사적 자료로 활용하기 위한 것입니다. 1989년부터 발행된 과거 기사를 톺아보시고 거제역사를 알아가십시오.  - 편집자 주

거제신문DB
거제신문DB

6.25 전란당시 거제도 등지로 몰려든 수많은 피난민들의 진료를 위해, 당시 국내굴지의 연세의대 세브란스병원이 거제도에 분원을 설립, 전라의 혼란속에서 난민진료는 물론 성병진료, 구호물자배급까지 맡는 등 보건의료해정에 앞장서 왔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고 서울로 돌아간 세브란스 병원측은 지역민들의 대민진료를 위해 '기념분원'을 남겨두었으나 40여년이 지난 현재 병원건물은 흉가로 전락(?) 철거 직면에 이르게 됐다.
본지는 지난 87년 옥포대우병우너 총무과 직원들이 구세브란스병원건물에 위험을 무릅쓰고 출입, 조사한 내용과 기록자료 등을 발췌 45년 세월을 함께한 세브란스구호병원의 모든 것을 소개한다. <편집자 주>

거제도내에서 일제시대 세워진 건물로 가작 오래된 목조건물인 장슝포동 218-2번지 일대 4동의 구새브란스병원건물이 일본인들에 의해 세워진지 65년만에 철거된다.

세월의 무상함을 말해주기라도 하듯 흉가로 변해버린 6.25전란당시의 세브란스 거제군 구호병원(일명 세브란스거제분원)은 해방과 더불어 거제도와 영욕의 세월을 함께한 산증표이기도 하다.

그동안 노후건물로서 도시미관은 물론, 태풍, 집중호우시 붕괴될 우려가 많다는 주민들의 진정에 의해 장승포시는 철거비용 400만원을 투입 이들 건물의 조기철거에 착수키로 했다.

한때는 공포영화의 촬영지로 돌변(?) '귀신나오는 집'으로 알려졌던 세브란스거제분원, 당시 연세의대 부속병원이었던 세브란스 구호병원이 거제도 장승포에 세워지게된 것은 6.25 민주평등부의장으로 재직중인 진도선씨(77·거제문협고문, 마전어린이집 운영)의 힘이 컸다.

1951년 1.4후퇴가 일어난지 3일 후인 1월7일.

6.25동란으로 인해 피난길에 오른 세브란스병원 임원일행이 부산에 머물던 중 당시 세브란스병원 책임자였던 조광현박사가 진도선씨(당시 거제중고등학교장)를 부산으로 불러 피난길에 오른 세브란스병원을 제주도로 옮겨야겠는데 "어떻겠느냐"는 질문에 진도선씨는 "제주도로 병원을 옮기는 것 보다는 거제도가 피난민들도 많고 진료대상자가 많다"는 설명과 함께 여러면에서 병원을 거제도로 옮기는게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완벽한 의료진 대민진료
그후 며칠뒤 조박사는 임원진 몇명을 대동하고 현지조사차 거제도를 방문, 임시사용할 시설등 현장을 둘러보고는 즉시 거제도로 병원을 옮기겠다는 약속과 함께 의료진과 50병상규모외 짐을 꾸려 거제도로 내려왔다.

이때가 51년 1월7일이였으며 당시 진도선씨는 자신이 운영하던 거제중고등학교(현 장승포시청)내에 교실 2칸을 수리하여 임시 진료소를 개설했다.

1.4후퇴로 인한 피난민들의 수가 늘어나고 전황히 수시로 변하자 세브란스병원측은 입원실을 갖춘 20병상규모의 진료소을 만들어 진료를 시작했으며 의사의 숙소는 지역민의 도움을 받아 장승포국민학교에서 사용하던 관사을 임시로 허가받아 사용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점점 환자가 늘어나고 피난은 난민들의 진료가 많아지자 이들을 진료하기에는 2칸의 교실이 턱없이 부족, 넓은 건물을 물색하던 중 당시 장승포국교내에 사용하지 않던 잔여교실이 있어 그곳으로 병원을 옮겨가게 되었다.

이당시 세브란스구호병원원장에는 문창모박사, 내과에는 조광현박사, 소아과에서는 이병희 당시 생리학교수가 담당했고, 해부학교수인 최금덕교수가 산부인과를, 최창수 박사가 안과를 맡았으며 이밖에 마취과에 이성영박사등 국내의 귄위자들로 갖춰진 완벽에 가까운 의료진을 구성하게 되었다.

거제신문DB
거제신문DB

C.A.C 도움 최신장비 도입
또한 당시의 난민 구호기구였던 C.A.C의 도움으로 각종 의료장비 및 병원기기, 의약품 등을 지급받아 세브란스 거제구호병원은 전란속에서도 난민치료에는 별 지장이 없었다고 한다.

특히 당시로서는 보기힘든 X-Ray등 신형의료장비등을 도입, 환자진료에 많은 도움을 주었던 것으로 알려지고있다.

그러나 종전과 함께 정국이 안정되고, 서울이 복구되자 세브란스측은 병원을 정리하기로 결정, 추진하던중 조박사의 간곡한 뜻에 의해 거제도내에 기념병원을 남겨 두기로 하고 의료장비일체를 넘겨받아 재설립한 것이 현재의 세브란스거제분원이다.

당시 조광현박사는 거제도분원을 설립할 마땅한 장소를 물색하다 장승포에서 간이재판소(현 노후철거건물)로 사용코자 수리해 놓았던 일본인 수산재벌 가네마루겐히찌씨(작고) 소유의 목조함석건물 4동을 매입, 세브란스 거제분원을 현재의 장승포동 218-2번지인 구촌마을로 옮겨 진료를 계속했다.

이후 조박사는 거제도내에 상주하는 지식인들과 기독교인중 몇명을 선정 병원운영위원회를 조직하고 당시 병원운영위원장에는 진도선씨를, 위원에는 원은상씨, 엄요한선교사 선두일선교사외 몇분을 추가로 선정, 병원운영을 일임했다.

그리고 임시병원장에는 주수택씨를 임명했으나 그후 김양선씨로 바꾸었다가 김씨가 얼마후 병원을 개인병원으로 변용하는 바람에 사실상 폐원됐다.

그러다 병원을 운영하던 김씨마저 운영이 어려워지자 20여년전 75년 완전히 폐쇄됐다.

현재 4동의 노후건물 중 원장숙소는 관리자가 내부를 손질하여 주거하고 있으나 기타진료실과 병동건물은 누수가 심하고, 바닥이 함몰되어 보존상태가 극히 불량하고, 먼지, 내려앉은 천정 등과 각종 의료장비가 설치된 시설들로 인해 괴기스런 분위기가 공포영화의 촬영세트를 연상케 하고 있다.

지난 87년과 93년 두차례에 걸쳐 서울세브란스병원자매원인 옥포대우병원 총무과 직원들이 폐가인 세브란스분원에 위험을 무릅쓰고 출입, 당시 거제분원에서 사용하던 각종 의료장비 및 의학의 역사적 가치가 높은 의료기구, 서류 및 물품등을 발굴, 자칫 사장위기에 놓여있던 귀중한 사료들을 되찾는데 일익을 담당했다.

당시 이들이 찾아낸 물품들로는 병원역사, 설립목적, 각종의학잡지, 임상병리실에 보관중인 약품 시약과 방사선 촬영조정기, 수술기구, 수술복, 현장사진, 명판등 약 500여점의 의약, 의료기구등이다.

현재 이들 의료기구들은 서울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에 보관중이다.

오는 3월경 철거되는 세브란스 거제분원은 그간 수차례의 주민철거요청에도 불구, 소유자와 협의가 이루어지지않아 미뤄오던 중, 지난달 14일 건물주(김숙현 서울거주외 4명 )가 방문, 철거동의서에 서명함으로써 거제도와 40여년 영욕의 세월을 함께한 세브란스병원은 사라지게된 것이다.

이웃주민들과 세브란스병원의 도움을 받았던 많은 지역민들은 "오래전에 의료박물관이나 6.25전쟁 기념관등으로 개축, 피난민들의 향수와 지역의료기관의 발자취를후손들에게 보여줬어야 했다"며 철거를 아쉬워 하고 있다. <이금숙기자>

저작권자 © 거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