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일광 시인/거제문화원장
윤일광 시인/거제문화원장

섣달그믐에는 풍습이 많다. 그중 하나가 집 안팎을 청소하는 일이다. 평소에 손이 가지 않았던 마루 밑에서 개가 물고 간 신발 한 짝이 나오고, 옷장 구석에서는 찾아도 없던 목수건이 나오고, 더러는 주머니 속에서 돈이 나와 횡재하기도 한다.

집안 대청소는 고대부터 해오던 관습이다. 새롭게 시작하려면 묵은 것을 치움으로 에너지의 흐름을 터준다는 상징성 때문이다. 집 청소뿐만 아니라 설이 되기 전에 하는 목욕도 같은 의미였다. 목욕은 명절맞이 연중행사였다.

목욕(沐浴)이란 '머리 감고(沐), 물로 몸을 씻는(浴) 일'을 말한다. 몸이 깨끗해야만 마음도 깨끗해진다는 종교적 의미가 강하다. 굿이나 제사를 지내기 전에는 반드시 목욕재계를 하는 이유다. 신성한 의식을 행할 때 먼저 몸을 깨끗이 한 후에 마음을 가다듬어야 부정을 피할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전에는 명절을 앞두고 동네 목욕탕은 앉을 자리가 없을 만큼 그야말로 문전성시였다. 공중목욕탕이 있는 곳이야 그래도 낫지만 시골에서는 명절이라고 목욕 한 번 하기가 그리 만만치가 않았다. 그래서 가마솥에 물을 끓여 큰 고무통에 부어 거기서 가족들이 차례로 들어가 씻었다. 그나마 땔감이 부족했던 시절이라 따뜻한 물조차 넉넉하게 쓸 수가 없었다.

다른 사람의 눈을 피할 만한 마땅한 곳이 없어 부엌이 전용 목욕탕이었다. 때가 많이 나온다고 어머니의 매서운 손바닥이 등짝을 두들기던 기억도 이제는 추억이 되었다. 그러던 명절맞이 목욕문화가 사라지고 말았다. 그런 말조차 생소하게 들린다. '요새 누가 명절이라고 목욕탕 가' 오히려 이상하게 여길 정도다. 명절 전에 온 가족이 함께 목욕하는 것이 공동체의례와 같았다고 하면 이해하지 못한다.

명절 목욕이 심드렁해진 이유는 목욕탕에 가지 않아도 집에서 언제든지 샤워할 수 있는 주택구조와 설날을 목욕재계로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여 쇠려는 신일(愼日)의 의미가 퇴색한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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