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일광 시인/거제문화원장
윤일광 시인/거제문화원장

1969년 대통령의 3선 연임을 허용하는 제6차 개헌 때 일이다. 야당이 국회 본회의장 단상을 점거하고 농성에 들어가자 여당은 다음 날 새벽 2시, 국회의사당 별관에 기습적으로 모여 6분 만에 날치기 통과시켰다. 이때 희한한 장면이 연출된다. 급하게 서두르다 보니 의사봉이 없었다. 이효상 국회의장은 급한 김에 주전자가 뚜껑으로 책상을 세 번 두들기며 가결을 선포했다.

요즘도 주주총회나 의회에서 안건통과를 두고 부결 쪽 사람들은 의사봉을 뺏으려고 난리를 친다. 그럴 때 보면 망치를 안 치면 안건통과가 안 되는 것 같다. 그런데 사실은 의사봉으로 두들기거나 주전자 뚜껑으로 두들기거나 아니면 주먹으로 책상을 쾅쾅쾅 치거나, 설령 안 쳤다 해도 법안 가결에 대한 효력은 똑같다. 의사봉 자체의 아무런 법적 효력은 없다.

의사봉으로 나무판을 3번 치는 것은 회의의 효과를 위한 상징적 의미의 소품일 뿐이다. 그러나 선포는 반드시 의장석에서 해야만 효력이 발생한다. 그래서 의장석 점거가 빠지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의사봉(議事棒)은 개회와 폐회, 의안 상정, 가결과 부결을 선언할 때 탁자를 두드리는 기구로 정확히 말하면 경찰봉, 지휘봉과 같은 막대기(棒)가 아니고 망치다.

의사봉을 치는 횟수도 나라마다 다르다. 우리나라는 세 번 치지만, 중국이나 미국의회에서는 한 번 치고, 의사봉 대신 종을 치는 나라도 있고, 아예 의사봉이 없는 나라도 있다. 우리나라 법원에서는 1966년부터 법정에서 법봉이 없어졌다.

대개 회의 때 위원장은 써준 시나리오를 읽으며 진행하게 되는데 지문은 괄호 안에 표시한다. 그런데 회의를 처음 진행하게 된 어느 위원장이 "가결되었음을 선포합니다. 의사봉 3타. 이상으로 오늘 회의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좌중이 웃음바다가 되었다. 의사봉 3타는 ( ) 처리된 부분이기 때문에 읽지 않고 방망이를 3번 두드려야 하는데, 위원장은 긴장한 나머지 그것조차 읽어버린 해프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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