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창수 목사
천창수 목사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소원은 우리가 항상 기뻐하고, 쉬지 않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이 소원은 명령이다. 무조건적이고, 초환경적인 명령이다. 절대적 명령이다. 어떤 환경에서든지 기뻐하라는 것이다. 어떤 경우에서든지 무조건 기뻐하고 감사하라는 것이다. 

환경이 좋으면 기뻐하고 어려우면 슬퍼하는 것이 아니다. 기분 내키면 기도하고 기분이 안 나면 기도를 쉬는 것이 아니다. 감사할만하면 감사하고, 이해가 안 되고 용납이 안 되면 불평해도 좋은 것이 아니다. 무조건이다. 무조건 기뻐하고, 기도하고, 감사하라는 것이다. 

이게 가능한 일인가? 사람은 너 나 할 것 없이 환경적이고 조건적이다. 있으면 기뻐하고 없으면 슬퍼한다. 성공하면 좋아하고 실패하면 원망한다. 그래서 이 짤막한 명령형의 세 구절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이해가 안 된다. 터무니없는 명령처럼 생각한다. 설혹 받아들인다 해도 실천하기가 불가능해 보인다. 

하지만 이 명령은 그렇게 쉽게 버려도 좋은 말씀이 아니다. 쉽게 포기해도 좋을 말씀이 아니다. 이 말씀 속엔 하나님의 깊은 자비와 배려가 숨어 있다. 행복한 신앙생활, 승리하고 복 받는 행복의 비밀이 이 말씀 안에 숨어 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 말씀은 실천 불가능한 명령이 아니다. 까다로운 하나님의 요구가 아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축복의 말씀이요 능력의 말씀이다. 그래서 "명령은 명령이되 행복한 명령"이다.

명령이라고 다 억지로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엄마가 학교 가는 아이를 불러서 "얘야, 엄마 방에 보면 두 번째 서랍에 엄마 지갑 있다. 그 지갑에서 오만 원짜리 하나 꺼내 가서, 있다 학교 마치고 친구들이랑 영화도 보고 맛있는 것 사 먹어라."라고 했다.

이것은 명령이다. 엄마 방으로 가라는 명령이다. 가서 지갑을 찾으라는 명령이다. 지갑을 찾아서 돈을 꺼내라는 명령이다. 그 돈으로 친구들이랑 영화도 보고 맛있는 것을 사 먹으라는 명령이다. 그런데 이런 명령에 "에이 귀찮게, 엄마는 왜 자꾸 내게 명령하시는 거야" 하는 아이가 있겠는가? "엄마 감사합니다." 하면서 냉큼 달려가지 않겠는가? 

명령이라고 다 피곤하고 짜증 나는 것이 아니다. 명령이라고 다 억지로 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하기 싫은 것을 시키니까 입이 댓 발이나 나와서 억지로 하는 것이지, 좋아하는 것을 시키면 백번 천번이라도 한다. 

우리 하나님은 사랑하는 당신의 자녀들에게 뭐든지 좋은 것을 주고 싶어 하신다. 행복한 삶, 풍요로운 삶, 승리하는 삶을 주고 싶어 하신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 명령은 우리를 속박하기 위한 말씀이 아니라, 우리에게 복을 주시는 말씀이다. 그래서 행복한 명령이요 행복으로의 초대이다.

그 속에는 하나님의 약속이 담겨 있는 약속의 명령이다. "항상 기뻐하라" "아멘" 하고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계속해서 기뻐할 수 있는 은혜를 주시겠다는 것이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 응답해 주시겠다는 것이다. "범사에 감사하라" 당장은 힘들고 이해가 되지 않지만 그래도 감사하면 모든 것을 감사 제목으로 바꾸어 주시겠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 어찌 까다로운 명령이겠는가? 어찌 나를 속박하는 율법이겠는가? 행복한 명령, 행복한 초대가 아니겠는가?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우리 하나님께서 이 가을에 우리에게 주시는 행복한 초대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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