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형구 거제수필문학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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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개울물에 빨래를 한다. 박수근 화가의 빨래터 그림에는 여인들이 쭈그리고 앉아 빨래하는 뒷모습이 보인다. 6.25 전후 집집마다 수도가 없던 시절이었다. 어린 나도 개울에 빨래하러 가는 어머니를 종종 따라다녔다. 

넓적한 돌팍에 빨랫감을 착착 치대여 흐르는 개울물에 뽀득뽀득 몇 번이나 헹궈 낸다. 한겨울에는 차가운 얼음물에 어머니의 손이 다 갈라졌다. 빨래는 방망이로 오지게 맞아가며 누런 땟물을 뱉어낸다. 오래 입어 찌든 때가 남아있는 러닝셔츠, 팬티, 옥양목 이불호청은 비누로 착착 치대어 양은 대야에 담아 연탄불에 푹 삶는다. 끓기 시작하면서 양잿물에 때가 녹아내리는지 누런 물이 보글보글 거품처럼 오르락내리락한다. 삶은 빨래는 한결 뽀얗게 씻겨 진다. 빨래 줄에 탈탈 털어 널면 빨래는 두 팔을 펄럭이며 마음껏 바람을 맞는다.

햇볕에 뽀송뽀송하게 마른 옷을 입으면 새 옷을 입은 것처럼 기분이 상쾌하다. 풀을 먹이는 모시옷이나 광목은 한 번 더 손질을 한다. 묽게 쑨 밀가루 풀을 먹여 살짝 말렸다가 반듯하게 접어 보자기에 싸서 자근자근 밟아준다. 하루 일을 다 마친 늦은 밤 어머니는 다듬이질을 하신다. 양손에 홍두깨를 들고 오른손 왼손을 교대로 재빠르게 두드리면 다듬이질 소리는 낭랑하게 밤하늘에 울려 퍼졌다.

그게 끝이 아니다. 화로에 달군 뜨거운 숯불을 다리미에 넣어 다림질을 하신다. 어머니는 양쪽 끝을 두 발로 누르고, 나는 반대편 양쪽 끝을 단단히 잡고 있어야 한다. 다리미가 지나 갈 때마다 옷감의 접힌 자국은 마술을 부린 듯 펴졌다. 그것이 신기하긴 했지만, 다리미가 점점 내 손 가까이 다가오면 데일까 겁이나 엉겁결에 들고 있던 천을 놓아버렸다. 

허릅숭이같은 나를 엄마는 곁눈질로 쳐다보았지만, 그렇게 몇번의 손질을 거친 옷들은 보송보송 빛이 났다. 그 시절 대부분의 옷감들은 빨아서 다림질을 해야 반듯하게 주름살이 펴졌으니 가뜩이나 어려운 시절, 시어머니 모시고 칠남매에 객식구까지 대가족 뒷바라지 하던 어머니의 수고로움이 얼마나 컸을지 짐작이 된다. 

복작거리며 살던 피난민시절, 어머니께 야단맞을 행동을 왜 그렇게 많이 했는지. 방을 치우지 않아서, 형제들과 싸워서, 부모님 말씀을 듣지 않아 혼이 났다. 국민학교에 다닐 때는 두 손 들고 교실에서 벌서던 일, 회초리로 손바닥 맞던 일도 잊혀지지 않는 기억이다. 잘못을 저지른 일들은 밤하늘의 별처럼 점점 늘어가고 영혼의 상처도 먼지처럼 쌓여갔다. 타인의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할 때 우리는 자신에게 실망하며 어둠의 그늘 속으로 숨는다. 

가난한 피난민 시절 월사금을 제 때에 못 내어 쫓겨 다니기도 했다. 사춘기가 시작될 무렵, 중학교 입학시험에 떨어진 것은 나에게 수치심과 고통을 안겨주었다. 이십대 미성숙한 젊음의 고통은 채워지지 않는 아픔으로 얼룩져 어두운 그림자를 남겼다. 쨍하고 빛이 비추는 순간 창틀의 먼지가 보이듯이, 내면의 어두운 심연을 마음의 눈으로 응시 할 때, 자신의 가장 밑바닥 진실된 내면을 볼 수 있다. 심연의 우물 속에서 마주치는 자기혐오와 부끄러움들.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글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이야 말로 문제다. 우리의 삶은 부끄러움에서 부끄러움으로, 용서에서 용서로 이어지는 여정이다'를 읽으며 다시금 용기를 얻는다. 

눈이 밝지 못하면 사물을 제대로 볼 수 없듯이 영혼이 맑지 않으면 내 모습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 크게 나쁜 짓을 한 게 아니기에, 먼지처럼 눈에 뛰지 않는 잘못들은 대수롭잖게 넘어가 습관이 되어 버린다. 그렇게 자신의 부끄러움도 모른 체 살아왔나보다. 먼지를 털어낸다는 것은 부끄러움을 안다는 것이다. 

그 옛날 흐르는 개울물에 방망이질하며 빨래하던 어머니처럼, 영혼의 때도 빨래하듯 착착 치대여 깨끗하게 빨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다행히 흐르는 세월은 마음의 먼지를 조금씩 씻어주었다. 육신의 시력은 점점 약해져도 영혼의 시력은 점점 밝아져서 세월의 주름 속에 숨어있는 잘못을 하나하나 보게 해준다. 고백성사가 아니어도 잘못을 뉘우치며 참회의 눈물로 영혼의 때를 씻는다. 오래전의 잘못도 희수(喜壽)의 나이가 된 지금은 '그때는 내가 잘못했노라'고 얼마든지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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