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창수 목사
천창수 목사

예수님은 온유한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또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고 힘들고 지친 사람들을 부르시면서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주님을 따르는 주의 제자들이 온유하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성경에서 온유하다(πρας)는 말에 쓰인 헬라어 단어는 "유순하다, 온화하다, 부드럽다"는 뜻이다. 그래서 온유한 사람은 온화한 사람이다. 온유한 사람은 유순하고 다정한 사람이다. 온유한 사람은 부드럽고 인내심이 있는 사람이다.

그렇다고 온유하다는 말이 약하거나 전혀 화를 내지 않는 것을 말하는 단어는 아니다. 본래 온유하다는 헬라어 단어에는 '길들인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야생마는 전문가도 다루기가 힘이 든다. 길들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잘 길들어진 말은 어린아이도 탈 수 있다. 이렇게 잘 길들어진 말을 표현할 때 '온유하다'는 단어를 쓰는 것이다. 그래서 온유는 무기력함이 아니다. 약한 것이 아니다. 강하지만, 그 강함이 잘 제어되고 있는 것을 온유라고 하는 것이다. 

온유는 예수님의 성품이다. 예수님은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다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무기력하신 분인가? 예수님은 나약하신 분인가? 예수님은 힘이 없어서 골고다 언덕으로 끌려가신 것이 아니다. 

예수님은 스스로 십자가의 길을 가셨다. 예수님께서 그 길을 가지 않으려고 하셨다면, 아무도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 수 없었다. 예수님은 온 우주를 창조하신 만왕의 왕이시요 만주의 주가 되시는 분이시다. 

누가 감히 예수님을 억지로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도 예수님은 군병들에게 잡혀 주셨고, 채찍에 맞으셨고,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 예수님은 온유하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힘이 없으신 것이 아니라 온유하신 성품에 따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신 것이다. 

온유함은 온화함과 부드러움과 억제된 성품이지 연약함은 아니다. 온유함은 제어된 힘, 잘 다스려진 힘이다. 

잠언25:28에 "자기의 마음을 제어하지 아니하는 자는 성읍이 무너지고 성벽이 없는 것과 같으니라"고 했다. 자기의 마음을 제어하지 아니하는 자, 곧 온유하지 못한 자는 무너진 성읍과 같다. 반대로 잠언16:32에서는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고 했다.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바로 온유함이다. 온유한 사람은 성을 빼앗는 사람보다 낫다는 것이다.

온유함은 비겁함도 아니고 자신감의 결여도 아니다. 온유함은 그저 인간적인 친절함도 아니다. 온유함은 이렇게 말한다. "나 스스로는 모든 것이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으로는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온유함은 또 이렇게 말한다. "나를 위해서는 아무것도 변호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위해서는 내 생명을 바치겠습니다."

벧전2:22에 "그는(예수님) 죄를 범하지 아니하시고 그 입에 거짓도 없으시며" 했다. 여기에 진짜 온유함이 있다. 예수님께서는 어떤 잘못도 범하지 않으셨다. 그는 죄를 범하지 아니하시고 그 입에 거짓도 없으셨다. 그를 비난하고 고소하는 모든 내용은 다 거짓이었다. 예수님을 비방하고 조롱하는 말은 다 거짓말이었다. 그런데 예수님은 어떻게 하셨는가? 

벧전2:23에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이에게 부탁하시며" 이것이 온유함이다. 예수님은 결코 자신을 변호하지 않으셨다. 그런데 사람들이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자 예수님은 어떻게 하셨는가? 채찍을 만들어서 그들을 치셨다. 예수님은 스스로를 위해서는 잠잠히 침묵을 지키셨지만, 하나님을 위해서는 목숨을 바친 것이다. 

온유함은 온순하지만 나약한 것이 아니다. 부드럽지만 무기력한 것이 아니다. 온유함은 하나님을 위해서만 사용되는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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