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일광 시인/거제문화원장
윤일광 시인/거제문화원장

어느 날 어머니는 뜬금없이 막내딸에게 밍크코트를 사달라고 한다. 사치와는 거리가 먼 엄마였는데 뜻밖의 말에 딸은 흔쾌히 사드린다. 나중에 가격을 알게 된 엄마는 무르라고 하지만 딸은 이렇게 말한다. "엄마는 그 옷을 입을 자격이 있어요"라고. 신경숙 작가의 장편소설 '엄마를 부탁해' 중에 나오는 이야기다. 근검절약이 몸에 밴 엄마들도 회갑 때 막내딸이 사다 준 밍크코트는 입는 용도가 아니라 자식들 잘 키워낸 상징으로 여겼다.

모피의 기원은 옷을 입기 시작한 역사와 별반 다르지 않다. 짐승을 잡으면 살은 먹거리가 되고 가죽은 옷이 됐다. 이런 가죽옷이 '의복'의 개념으로 바뀐 것은 기원전 1000년경 중국이다. 중국의 모피수출은 인도와 중동을 거쳐 유럽으로 퍼진다. 18세기 이후에는 밍크 사육의 성공과 모피가공기술의 기계화로 미국의 모피산업이 세계를 주도하게 된다.

모피 중에도 족제비과의 해달·수달·밍크·담비가 으뜸이다. 특히 담비는 색채가 아름답고 윤택이 나며 부드러워 모피 중 최상으로 친다. 경상도에서는 '담부'라 부르며, 한자어로는 초(貂:담비 초), 산달(山獺)이라 한다. 중세시대의 담비 모피는 귀족들만 애용하는 상급 모피로 황제나 국왕들의 대관식 의상, 초상화 등에 등장한다. 조선시대 당상관이 돼야 의복이나 모자에 초피(貂皮)를 사용할 수 있었고 이하는 족제비털을 썼다.

'범 잡는 담비'라는 속담이 있다. 담비는 겨우 3㎏의 작은 덩치에 혼자 있기를 좋아해 범과는 상대가 되지 않지만, 담비의 전투력을 과장해서 의미 중심으로 만들어진 속담인 것 같다. 아무리 뛰어난 인재나 탁월한 견해도 떼거리로 덤비는 세력이나 악성루머, 가짜뉴스 같은 사견(邪見)은 당하지 못한다는 교훈이 숨겨 있다.

환경부에서 지정한 멸종위기 야생생물 Ⅱ급으로 보호받고 있는 담비가 지난 7월26일 경북도청 신도시 중앙호수공원 옆 풀밭에서 발견돼 화제가 됐다.

저작권자 © 거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