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제21회 흥남철수·거제평화문학상 공모전 - 독후감 부문 장려상]
'여든 아홉이 되어서야 이 이야기를 꺼냅니다'를 읽고

변은영
변은영

내가 잘 알지 못했던 곳, 거제도.

단지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큰 섬이고, 이름난 관광지 중에서 한 곳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살수록 참 아름다운 곳이며 너무 많은 것이 담겨 있는 곳이다. 흥남철수 당시 메르디스 빅토리호가 도착한 장승포항부터 포로수용소까지 여러 이야기를 듣고, 보고, 읽으며 알고 나니 또 거제라는 섬이 다르게 다가왔다. 

10년 전 결혼을 앞두고 시할아버지께 첫인사를 드리러 갔던 날, ‘6·25 참전 용사의 집’이라는 작은 표시를 따라 들어가니 키 작은 할아버지께서 반가이 맞아주셨다. 손부를 가까이 앉히시고 도란도란 6·25전쟁 이야기부터 피난 갔던 이야기, 앞으로 내가 살게 될 거제에 있는 포로수용소에 도착했을 때 이야기까지 해주셨다. 

꿇은 무릎이 아프고 다리가 저려왔다. 군대 이야기도 아니고 6·25전쟁 이야기라니 내겐 너무 먼 이야기이고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 같았다. 하지만 한 마디라도 심어주고 싶어 하는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끊을 수는 없어 끝까지 고개 끄덕이며 들었다. 

거제와 전혀 상관없던 뭍에 살던 나는, 거제 하면 외도·바람의 언덕·몽돌해수욕장만 생각하던 스쳐 지나가는 관광객이었다. 그러나 내가 살고 있고 앞으로도 살아가야 할 거제에 조금씩 관심을 가지면서 자연스럽게 포로수용소에서 흥남철수, 흥남철수에서 6·25 전쟁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았다. 

‘여든아홉이 되어서야 이 이야기를 꺼냅니다’라는 이야기로 뒤늦게나마 생생한 6.25 이야기를 간접 경험해 보았다. 

나의 시할아버지께서도 살아 계셨다면 아흔이 넘으셨겠지. 

찬란한 청춘을 전쟁터에서 보냈다니 너무 안타깝다. 이 글의 작가이신 한준식 선생님께선 평화가 나날이 이어지다 보니, 전쟁의 공포에 무뎌졌다고 하셨다. 그렇다. 나도 전혀 전쟁의 위험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텔레비전에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소식이 들릴 때도 ‘안됐다’, ‘우짜노’가 대부분이었다. 그저 먼 나라 이야기였으니. 내가 살고있는 이곳에서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해 보지 않았다. 

얼마 전, 북에서 미사일을 쏘는 것을 본 친정어머니께서 “아이고, 전쟁 일어나면 우짜노?” 하고 얘기할 때에도 당연히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그런 일 없을 거라고 말씀드렸다. 하지만 순간 여러 생각이 들었다. 우린 분단된 상태에서 휴전 중이구나. 점점 분단이 익숙해져 있다 보니 뭐가 잘못되어 있는지 인식조차 하지 못하고 살고 있구나 싶었다. 

요즘 MZ세대가 이렇게 나라를 위해 몸을 내던질 수 있을까? 어렵게 지켜주신 평화 소중히 여겨야 하지 않을까?

내가 군대에 대해 조금이라도 아는 남성이라면 아니면 내가 여군이었다면 좀 더 이 이야기에 크게 공감하지 않았을까. 전쟁도 글로 배웠고, 무기를 만져본 적도 없는 나에게 지관표·진지·방공호·포사격 신호탄·차폐하라 같은 단어들이 낯설었다. 내가 직·간접으로 아는 것들을 총동원해서 머릿속에 그려가며 책을 읽어 내려갔다.

행군 중 정말 죽을 정도의 목마름에 발견한 물, 물이 흘러나오는 곳 주변에 뒹굴고 있는 시체라는 글을 보았을 때는 상상만으로도 끔찍했다. 죽음의 냄새가 내 코끝까지 스미는 것 같았다. 난 이미 그들의 나이를 지났지만, 그런 현실을 받아들일 용기도 자신도 없다.

군인들이 부상을 입고 과다출혈이 있었을 때도 자칫 벌컥벌컥 들이켠 물이 피의 농도를 옅게 할까봐 목만 축여야 했다. 정말 목숨이 걸린 전쟁이구나!

“한준식 선생님, 1915일 간의 험난했던 복무가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드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책을 읽는 동안 전쟁 영화 한 편을 보는 느낌이었다. 어떻게든 그 상황을 떠올려 보려는 내 자신도 발견했다. 포로수용소를 가 본 경험, ‘태극기 휘날리며’ 같은 전쟁 영화를 본 경험, 이 책을 한 권 읽어 내려가며 내 머릿속은 온통 전쟁터였다.

늘 아이들에게 역사는 알 필요가 있다, 배워야 한다고 말을 하면 아이들은 현재가 중요하지 예전 것을 왜 알아야 하냐고 되묻는다. 시험 준비를 하기 위해서 지식적인 6.25전쟁 암기가 아니었으면 한다. 순서를 알고 인물을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뒤에 가려진 지금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노력한 이들의 수고로움을 조금이나마 알아줬으면 좋겠다. 

책 뒤표지 추천사에서 ‘이 책의 저자는 전쟁의 참상을 직접 경험하셨고 추천사를 적는 자신은 반공을 배우며 자랐다. 하지만 이 책을 읽는 대한민국 미래 인재들은 반전을 배우며 자라기를 바란다’라고 했다. 정말 명언이라 생각했다. 반공보다는 반전이 옳다. 분열보다는 화합이 바람직하다. 

내 아이들에게까지 전쟁의 공포를 남겨 주어서는 안되겠지. 조용히 6.25 관련 동화책을 찾아 아이들에게 내밀어 본다. 함께 읽어보고 이야기 나누어 본다. 누구만 옳고 그르지 않다. 이제 그저 다른 그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필요하다.

작은 관심이 시작이다. 우리는 평화통일을 바라보며 나랑 상관없는 일이라며 그저 외면하고 있다. 전쟁·평화·통일에 대해 책을 읽거나 이야기를 들어 본 적 없는 우리 아이들이 우리나라의 통일에 너무 무관심해질까 걱정이다. 서로를 아는 것이 작은 시작이다. 

지금의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도록 노력해 주신 분들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 시대의 역사를 잊지 않고자 하는 노력으로 지인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저작권자 © 거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