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겸·최병안 6.25참전유공자회 전·현 거제지회장

6.25참전유공자회 최종겸 전 회장(사진 왼쪽)과 최병안 현 회장. @강래선
6.25참전유공자회 최종겸 전 회장(사진 왼쪽)과 최병안 현 회장. @강래선

1950년 6월25일, 잊어서는 안될 우리의 아픈 역사다. 호국보훈의달 6월을 맞아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순국선열과 국가유공자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리고자 대한민국 6.25참전유공자회 거제시지회를 찾았다. 

동족상잔의 전쟁 6.25를 겪지 않은 후손들에게 그날의 아픔과 진실을 올바르게 알려주기 위해 초·중·고를 직접 찾아가 한국전쟁 바로 알리기 교육에 심혈을 기울인 최종겸(96·사진 왼쪽) 6.25참전유공자회 전 거제시지회장은 이 땅에 다시는 동족이 총부리를 겨누는 전쟁은 없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2001년에 설립된 대한민국 6.25참전유공자회는 생명을 담보로 이 땅의 자유 평화를 지키고 번영의 토대를 다져놓은 전쟁 영웅들이 긍지와 자부심으로 만든 보훈단체다.

6.25참전유공자회 최종겸 전 회장(사진 왼쪽)과 최병안 현 회장. @강래선
6.25참전유공자회 최종겸 전 회장(사진 왼쪽)과 최병안 현 회장. @강래선

전쟁에 참전했던 용사들이 출신 부대와 참전 지역별 등으로 나눠 참전전우회, 참전동지회 등을 만들어 활동해오던 것을 2001년 국가보훈처로부터 법인설립 허가를 받았고 2008년 국가유공자로 지정돼 현재에 이르고 있다.

거제시지회 최병안(93) 현 지회장은 "처음 발족했을 때만 해도 6.25참전유공자들이 150여명에 달했지만 지금은 대부분 돌아가시고 거동이 불편해 지금은 20여명 정도가 활동을 이어 나가고 있다"고 했다.

또 대다수가 90을 넘긴 고령이고 건강을 장담할 수 없기에 국가와 국민이 이들을 예우하고 여생을 편하게 마감할 수 있는 경제적 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평균연령 93세. 이들에게 대한민국은 목숨을 바쳐 지킨 소중한 것이어서 후손들이 이들을 고마워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들의 고마움을 6월 한 달도 아니라 현충일 하루 '영웅의 희생을 잊지 않겠다'는 현수막으로 대신하려고 하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든다.

6.25참전유공자회 최종겸 전 회장. @강래선
6.25참전유공자회 최종겸 전 회장. @강래선

잊을 수 없는 3년의 전쟁

6.25참전유공자회의 활동 목적은 미래를 짊어지고 나갈 세대에게 6.25전쟁의 참혹함과 진실을 바로 알리는 일이다. 

6.25참전유공자회의 역할은 전쟁의 참상을 후손들에게 제대로 전달해 올바른 국가안보 의식을 갖도록 해 다시는 이 땅에서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고 최종겸 전 회장은 밝혔다.

아흔여섯이라는 고령에도 불구하고 전쟁에서 겪은 일들을 날짜 하나 틀리지 않고 정확하게 구술하는 그에게서 전쟁의 아픈 기억이 얼마나 크고 참담했는지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최 전 회장은 고향 칠천도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던 중에 전쟁을 맞았다. 이후 초등학교는 피난민 수용소로 바뀌었고 수용소 소장을 맡아 관리하던 중 피난민에 의해 장티푸스가 걸려 죽을 고비를 넘긴 후 완치됐다. 

1951년 10월 군에 입대해 제주도 훈련소에서 8주 교육을 받고 강원도 2사단에 배치됐다. 

그 당시 고졸은 고학력이라 얼마 후 하사관 교육을 명령받았다. 그러나 고된 군사훈련을 받기 싫어 처음에는 거부했는데 중대장이 군사교육 중에는 최소 죽지는 않는다는 말에 교육을 받았다. 8주 훈련을 마치고 돌아와 보니 훈련소 70명 입대동기생 중 한 명만 살아있고 모두 전사했다는 소식을 듣고 순간 두려움이 몰려왔고 전쟁이 무섭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고 회상했다. 

휴전협상이 진행되던 중 뺏고 빼앗는 고지전 전투에서 숱한 죽음의 그림자를 뒤로하고 큰 부상 없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생각으로 어떤 상황에도 정신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대부분 죽은 전우들은 포탄이 떨어지면 다른 곳으로 도망가려고 발버둥 치다 죽음을 맞이했다. 그는 한곳에 포탄이 두 번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으로 터득했기에 엄폐물에 머리를 숙이고 정신을 놓지 않고 버틴 것이 전쟁에서 살아남은 비결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6.25참전유공자회 최병안 현 회장. @강래선
6.25참전유공자회 최병안 현 회장. @강래선

한국전쟁 바로 알리기 교육에 헌신

현 6.25참전유공자 거제시 최병안 지회장은 가덕도에서 태어나 부산에 있는 경남상업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중 19세 여름인, 1950년 7월 친구와 함께 자원 입대했다.

부산 감천에서 20일 남짓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경기도 연천 6사단 7연대 1대대 2중대에 배치받아 한국전쟁을 겪었다. M1소총 사격훈련을 한 번 받고 전투에 참여한 두 번째 전장에서 총알이 아랫배를 스치고 팔뚝에 박혀 육군병원으로 후송, 한 달 정도 치료 후 다시 연천 지역 전장으로 복귀했다.

여러 차례 죽을 고비를 넘긴 일들이 벌써 70년 전 일이지만 그의 뇌리에는 엊그제 일처럼 생생하다며 눈물이 고였다.

그는 6.25 참전유공자들이 지금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서 매월 받는 지원금이 55여만원 남짓한데 너무 적다고 말했다. 

금액의 많고 적음을 논하기 이전에 나라를 위해 목숨을 초개와 같이 생각하고 지원한 이들의 목숨값을 돈으로 평가받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래도 그에 맞는 예우 차원에서 기본적인 생활비가 될 수 있을 정도의 연금지급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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