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귀식 밀양교회 목사
민귀식 밀양교회 목사

마태복음 25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공생애 사역을 정리하시면서 종말과 재림에 관한 내용으로 세 가지 비유의 말씀을 제자들에게 들려주고 있는데, 그 내용이 열처녀 비유와 달란트 비유, 그리고 양과 염소에 대한 비유의 말씀입니다.

이 세 가지 비유를 통하여 종말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성도들의 올바른 삶의 자세를 가르쳐 주고 있는데 특히 “달란트 비유”는 각자 우리 자신에게 주어진 달란트라는 재능을 가지고 악하고 게으른 자의 삶을 사는 사람이 아니라 착하고 충성된 자의 삶을 살 것을 강조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렇다고 하면, “악하고 게으른 자”와 “착하고 충성된 자”의 차이점은 무엇일까요? 예수님은 이 비유의 말씀을 통하여 성실성과 열정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섯 달란트 받은 종과 두 달란트 받은 종은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했다(16-17)”고 말씀하고 있으며, 한 달란트 받은 종은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다(18)”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이 두 그룹 사이의 분명한 차이점은 행동하는 성실성과 열정이 있고 없음의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즉 행동하는 열정의 사람, 성실하게 노력하는 사람에게 아름다운 열매,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의 열매가 맺히게 되었지만 행동하는 열정과 성실성을 찾아볼 수 없는 한 달란트 받은 종에게는 그 어떤 열매도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종말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행동하는 열정의 사람으로 성실하게 일하는 근면한 사람으로 오늘을 살아가며 열매 있는 삶을 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열심히 일해야 하는 시기입니다. 삶을 경작하며 희망의 씨앗과 사랑의 모종과 거룩한 나무를 심고 가꾸고 돌보며 열심히 땀 흘려 일해야만 하는 때입니다. 준비된 생명의 퇴비를 삶의 현장에 뿌리며 하늘의 도움을 두 손 모아 빌 때입니다.

지성(至誠)이면 감천(感天)이라고 했습니다. 마지막 봄을 맞이한 6월을 시작하면서 우리를 향하여 기대하시는 하나님과 세상 앞에 행동하는 성실성과 열정을 생활 속에 영롱한 꽃으로 피워 내면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을 살맛 나는 세상으로, 희망의 나라로 만들어 가야 하지 않을까요?

한 부자 양반집에 두 명의 머슴이 있었습니다. 똑같은 머슴이지만 두 사람은 너무 달랐습니다. 똑같은 일을 하는데도 한 사람은 늘 불평과 불만이 가득합니다. 그 어떤 일을 시키면 기분 좋게 일하는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늘 불평하고 원망하며 매사에 부정적입니다. 일이 많다느니, 일이 힘들다느니, 하면서 늘 불만입니다.

그런데 다른 한 머슴은 주인의 말이라면 늘 하늘처럼 받들며 일을 열심히 합니다. 매사에 감사한 마음을 표현합니다. 그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넘쳐납니다. 이 일을 다 끝내고 저 일을 좀 하라고 하면 두 말도 하지 않고 “네 주인님! 네 주인마님!”하면서 입 안의 혀처럼 기분 좋게 순종하며 일을 하는 머슴이었습니다. 이제 머슴으로 일할 수 있는 기한이 다 차서 마지막 날이 되었습니다. 저녁 식사를 다 마칠 시간이 되자 주인어른이 두 머슴을 불러놓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일이면 너희들도 우리 집에서 독립할 수 있는 날이구나. 마지막으로 너희들에게 부탁할 일이 꼭 준행해 주기 바란다”라고 말하면서 “오늘 저녁 저기 있는 저 짚으로 새끼를 좀 꼬도록 하여라. 굵게 꼬지 말고 아주 가늘고 단단하게 꼬아야 하느니라” 그러면서 새끼꼬는 짚단을 넉넉히 주었습니다.

주인어른의 말에 자신을 독립시켜 새로운 삶을 살도록 배려하는 주인의 그 마음과 사랑에 더없이 고마워 감사한 마음으로 저녁상을 물리고 난 후 쉬지도 않고 열심히 새끼를 꼬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속으로 생각하기를 “이제 주인어른을 위해 일할 수 있는 날이 마지막 날인데 새끼를 잘 꼬아 드려야지”하는 마음으로 밤을 꼬빡 세면서 새끼를 가늘고 단단하게 그리고 길게 새끼를 꼬았습니다. 그 결과 짚이 다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머슴은 주인의 요구에 심사가 뒤틀렸습니다. “아니 머슴으로 있는 이 마지막 날 저녁때까지 일을 시키다니. 독립시켜 주고자 한다면 곱게 좀 풀어 주지, 이 마지막 날 저녁까지 부려 먹는 건 무슨 심보야?” 이렇게 투덜대면서 주인어른이 부탁한 새끼를 대충 꼬았습니다. 처음에는 가늘고 단단하게 꼬다가 “에라, 모르겠다. 어차피 내일이면 머슴 일도 끝나는 시간인데 대충하자” 하면서 대충대충 새끼를 꼬다가 그만 잠자리에 들어갔습니다.

이튿날 아침이 밝아오자 주인어른은 두 머슴을 불렀습니다. “얘들아 이리들 오너라. 어제저녁 새끼는 다 잘 꼬았느냐? 그것을 가지고 오너라”하고는 광 앞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엽전이 가득 쌓인 광 문을 활짝 열어젖히며 말했습니다.

“그동안 우리 일을 하느라 고생들 많았다. 자, 이제부터 너희들이 독립하여 먹고살 수 있는 돈을 내가 주려고 한다. 어젯밤 자기가 꼰 새끼줄에다 엽전을 꿸 수 있는 대로 마음껏 꿰어서 가지고 가거라.”

그렇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주어진 일에 대하여 행동하는 성실성과 근면함으로 사명을 감당하며 충성을 다한 사람에게는 많은 상급이 뒤따르게 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슬피 울며 탄식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인생의 법칙입니다.

종말 시대를 지혜롭게 살아가는 사람, 마지막 주인 앞에 서는 그날 환영과 칭찬과 상급과 영광의 면류관을 받으며 함박웃음을 웃을 수 있는 축복의 주인공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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