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광 칼럼위원
김미광 칼럼위원

코로나19 이전에 유럽 여행을 간 적이 있었다. 출발하기 전에 주변 사람들로부터 가장 많이 들은 말이 ‘가방 조심’ 이었다. 내 지인들 중에는 실제로 유럽 여행을 갔다가 가방을 소매치기 당한 사람도 있고 짐 가방을 통째로 잃어버리거나 선물이 든 꾸러미를 잃어버린 사람도 있다.

그래서 여행 내내 신경 쓰였던 것이 가방이었다. 기차를 타도 여행 가방을 쇠사슬로 묶어놓아야 했고, 어깨에 메는 가방을 바짝 가슴 안쪽으로 댕겨서 매고 다니면서 수시로 지갑이 잘 있는지 확인해야했고 현금만 따로 떼어 지퍼가 달려 있는 속옷에 넣고 다니기도 했다.

특히 사람 많이 타는 유럽 지하철을 탈 때면 인상이 험상궂거나 조금이라도 이상한 행동을 할 낌새가 보이면 바로 자리를 이동하고 자나 깨나 가방의 안전에 신경을 썼다. 그러다보니 안 그래도 먼 이국땅에서 이곳저곳 여행하면서 다니는 것이 피곤한데 가방까지 극도로 조심하다보니 정신적 피로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렇게 찬란한 문화유산과 아무데나 찍으면 엽서가 되는 아름다운 자연, 집채만한 바위를 밀가루 반죽 다루듯이 다루어 예술 작품을 만들어내는 놀라운 솜씨를 가진 사람들이 어째서 이렇게 양심도 없이 먼 나라에서 온 여행객들의 물건을 슬쩍해서 여행자들을 피곤하게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물론 모든 사람이 다 그런 것처럼 일반화의 오류를 저지르고 싶지는 않지만 같은 사회와 국가에 사는 사람들끼리 사회적 합의란 것도 있지 않는가? 아무리 집시 출신들이 어쩌고 해도 세대가 바뀐 지 오래다. 사회적 분위기가 남의 물건에 절대로 손을 대지 않는 분위기가 조성돼 있다면 이런 일은 없을 텐데 자연만 멋있고 솜씨만 뛰어났지 그런 의식은 없나보다고 생각했다. 

그 아름다운 자연과 찬란한 문화유산을 가지고도 여행객들이 가방을 꽉 끌어안고 다녀야 할 정도로 도덕성에 대해 사회적 합의가 없는 나라는 단지 유럽에만 있지는 않다. 남미는 더 심하다. 언제 한번 보니 텔레비전으로 사회자가 거리에서 방송 진행을 하고 있는 중간에도 방송 장비에 손을 대는 사람이 있고, 대낮에도 어떤 거리는 위험해서 건장한 남자들조차도 아예 지나다니지 못하는 나라도 여럿 있었다.

그보다 더한, 물건만 잃어버리면 그나마 다행인 나라도 있다. 사람을 납치해서 가족들에게 돈을 요구하는 나라도 있다. 이런 나라들은 그 누구도 가고 싶지 않을 것이고 누구라도 어떤 경제적 투자나 지원도 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결국 그 국민들은 그런 비양심적이고 비도덕적인 사람들을 스스로 처리하지 않음으로 국제적으로 자신들을 고립시키고 자승자박을 하는 꼴이 되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나라 경제는 점점 더 엉망이 되고 국민들은 더 어려워지고 그 어려워진 국민들이 다시 외국인들에게 사기를 치거나 물건을 훔쳐가는 것이다. 이렇게 악순환이 계속 된다. 

얼마 전 K-양심에 관한 뉴스를 보았다. 한국을 찾은 외국인들의 분실물이 빠른 시간 안에 제 주인에게 돌아갔다는 소식이다. 동대문에서 현금 500만원과 신용카드가 든 명품가방을 잃어버린 중국인이 분실 신고가 있은 지 불과 50분만에 가방을 다시 찾은 사건, 러시아 관광객은 버스에서 현금 300만원이 든 지갑을 잃어버렸다가 되찾았고, 일본인이 현금 800만원과 여권이 든 가방을 잃어버렸다가 다시 찾은 사건도 있다. 누가 가져간 것을 되찾은 것이 아니라 본인의 실수로 잃어버린 물건까지도 째까닥 주인을 찾아주는 K-양심이 나는 참으로 자랑스럽다. 

물건을 되찾은 외국인들이 자기 나라로 돌아가 한국인들의 K-양심에 대해 적극적으로 얘기하지 않겠는가? 입소문은 빠르다. K-양심의 소문을 들은 외국 관광객들이 안심하고 우리나라를 찾게 된다. 그러면 우리는 더 많은 손님을 맞이하게 되고 그들은 안심하고 돈을 펑펑 쓰며 우리나라를 다녀가지 않겠는가?

어느 나라나 해결하기 어려운 고질병이 있다. 나는 우리나라 같은 경우는 그것이 정치라고 나는 생각하지만 언젠가 이 문제가 해결된다면 우리는 정말로 세계 속에 우뚝 서서 도덕성의 모범이 되는 그런 양심 선진국이 되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나저나 얼마 전에 잃어버린 내 귀걸이는 누가 안 찾아주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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