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일광 시인/거제문화원장
윤일광 시인/거제문화원장

아프리카에서는 결혼식 때 신랑신부가 빗자루를 뛰어 넘는 풍습이 있다. 과거 식민지 때 노예로 팔려가 결혼을 금지 당하고 오로지 빗자루를 들고 일만 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의 아픈 기억을 되새기며, 이제 빗자루를 넘어선다는 상징인데 슬픈 조상의 애환이 깃든 전통문화다.

스코틀랜드에는 결혼식 전날 'the blackening(검게 칠하기)'이라는 풍습이 있다. 친구와 가족이 신랑신부에게 지저분한 음식물과 밀가루 같은 것을 몸에 덮어씌우고 트럭에 태워 동네를 한 바퀴 돈다. 이는 악령을 막기 위한 액땜행사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마을사람이나 친지들이 '신랑달기'놀이를 하는데 한자로는 동상례(東廂禮)다. 그 기원은 중국의 명필인 왕희지가 장가를 들 무렵 그의 장인될 사람이 그를 자기 집의 동상(東廂:동쪽의 건물)에 두고 행동거지를 살핀 뒤 사위로 삼았다고 했다. 이때부터 동상은 사위의 별칭이 됐다고 '세설신어'에 나온다. 전에는 '남의 집 새신랑'을 동상이라고 불렀다.

신랑신부를 방안에 불러 앉히고 '처녀를 훔쳐 간 죄가 크다'며 신랑의 발목을 묶어 대들보에 달거나, 키가 큰 남정네의 어깨에 걸치고 발바닥을 마른북어나 빗자루로 때린다. 신랑은 죽는 시늉을 하면서 장모에게 살려달라고 호소하면, 장모가 술과 음식을 대접하면서 놀이는 끝난다.

간혹 심하게 다뤄 신랑과 싸우다가 신부 아버지로부터 혼이 나고, 음식을 먹어보지도 못하고 쫓겨나는 일도 있었다. 오죽했으면 지나친 신랑달기는 경범죄로 다스린다고 경찰이 나서기도 했다. 신랑달기는 발바닥에 있는 용천혈을 자극하면 남성의 성기능이 강화된다는 한의학적 속설도 한몫했다. 

믿거나 말거나 6.25때 신랑을 묶어놓고 발바닥을 때리는 모습을 보고 미군이 공산군이냐고 영어로 묻자 영어를 모르는 사람이 'YES'라고 했더니 총으로 쏴 죽였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도 있다. 이제 서서히 사라져가는 우리 전통혼례풍습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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