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일광 시인
윤일광 시인

사극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무대중 하나는 주막이다. 주막은 술만 파는 곳이 아니라 사람들이 만나는 곳이며, 거래가 이뤄지고, 편지를 주고 받고, 더러는 물물교환에 환전까지 이뤄지는 곳이다. 때로는 고향소식도 들을 수 있다. 과거를 보러 가는 사람은 일부러라도 주막에 들어가 먹고 자면서 한양소식에 귀를 기울인다. 암행어사가 비렁뱅이 꼴로 정보를 수집하는 것도 주막이었다.

주막에는 간판이 없지만 여염집과 구별됐다. 대개 출입구에 '주(酒)'자를 쓴 등을 달아 놓았다. 손님들이 잘 보이는 좌판에는 소머리나 돼지머리 삶은 것을 늘어놓아 주막임을 알 수 있도록 했다. 주막에는 숙박공간도 제공했다. 주막에서 술이나 밥을 사먹으면 잠은 공짜로 재워 줬다. 방이 몇 개 되지 않는 시골주막의 잠자리는 돈이 많건 적든 도착순이었다. 양반이든 평민이든 먼저 온 사람이 따뜻한 아랫목을 차지했다.

주막은 술집·식당·여관을 겸한 영업장이었다. 여기에 최고의 실권은 가진 사람은 주모다. 주모의 능력에 따라 주막의 매출이 달라진다. 정선아리랑 중에 "술이야 안 먹자고 맹세를 했는데, 안주 보고 주모 보니 또 생각나네"라고 했다.

영남에서 한양으로 과거를 보려가는 길에 있는 주막에서 절대로 내놓지 않는 음식은 낙지였다. 어감이 '낙제' '낙방'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몰락한 양반네가 먹고살기 위해 경영하는 주막도 있었다. 양반 체면에 술을 파는 일을 부끄럽게 여겨 주모는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 팔뚝만 내어 술을 따라 준다고 팔뚝집이라 불렀다.

한 때는 주막거리가 형성될 만큼 성했던 주막이 현대화와 함께 다 사라지고 경북 예천군 삼강나루터에 옛 모습 그대로 복원한 '삼강주막'이 추억의 명소가 됐다. 후덕한 몸매에 국밥과 막걸리를 개다리상에 푸짐하게 얹어 궁둥이를 짤래짤래 흔들며 바쁘게 왔다 갔다 하는 주모의 해학적인 모습에 웃음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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