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미정 거제수필문학 회원
강미정 거제수필문학 회원

오래 기다렸다. 사람들이 코로나19로 인해 채우지 못했던 것 중 하나가 여행이다. 집합 금지가 풀리며 봇물 터지듯 일상에서의 탈출을 하고 있다. 이에 질세라 지인들은 우리들도 어디든지 떠나보자고 한다. 이런 이야기에 벌써 여행지에 온 사람처럼 신이 나 있다. 나도 덩달아 들떠 마음에 봄바람이 분다. 하지만 몇 해 전 여행에서 힘들었던 기억이 떠올라 살짝 불안감이 들기도 한다.

여행에도 궁합이 있다. 가끔은 TV에서 부부간 궁합을 이유로 집안의 반대에 부딪쳤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요즘 세상에 무슨 얘긴가 싶어 고개를 저었다. 그런데 여행을 앞둔 시점이라 그런지 여행궁합이라는 말에는 고개가 끄덕여진다. 굳이 여행에 궁합이란 표현을 한다는 것이 그렇지만, 모든 일정이 끝날 때까지 함께 지내야하는 일행들과의 관계에 관한 이야기일 것이다. 자기만의 생활습관 때문에 함께 있기 힘든 사람이 있고, 또 너무 예민해서 같이 지내기 불편한 사람도 있다. 아주 가끔은 가족만큼이나 편하게 느껴지는 사람도 있는 것 같다.

몇해 전 동유럽으로 14박15일 동안 세 사람과 여행을 떠났다. 모두가 서로를 잘 아는 사람들이라 마음이 편했다. 낯선 나라에서 운전을 해야 하는 부담감도 있었지만, 자유여행이 주는 낭만적인 경험을 기대하며 한껏 설렜다. 모두가 악기를 연주하는 분들이라 버스킹 계획도 세웠다. 다행히 일행 중 한분이 이런 일에 밝아 모든 일정을 그분께 믿고 맡겼다. 

출국장에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 것부터 마음이 부푼다. 낯선 땅에서 느껴지는 익숙하지 않은 모든 것들이 좋았다. 그러나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일까. 첫날부터 꽉 짜여 진 일정으로 잠시의 여유가 없어 몸은 파김치가 되었다. 찜통 같은 날씨에 쉴 새 없이 계속 걸어 다녀야하니 너무 힘들었다. 쇼핑 일정이 너무 많아 거기에 시간을 보내다보니 나의 바람은 산산조각 나버렸다. 그렇게나 원 없이 하고 싶었던 해외 버스킹은 한낱 꿈으로 그쳤다. 식사 때마다 메뉴를 정하는 것도 편하지 않았다. 작은 발걸음 소리에도 예민한 분이 있었다. 잠이 없는 나는 밤이나 이른 아침에는 이불을 뒤척이는 것조차 눈치가 보여 신경이 쓰였다. 

하루 이틀이면 그러려니 하고 넘길 수 있겠지만, 보름 일정이다 보니 걱정이 태산이었다. 걱정스런 마음에 긴 한숨이 나도 모르게 나왔다. 열흘째부터는 하루하루가 고행이 되어 갔다. 앞으로 남은 오일을 어떻게 견딜까 생각하니 심란하기 이를 데 없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유럽에서의 자동차 주유후 정산방법을 깜빡 잊어버려 실수를 하는 바람에 일행에게 꾸지람을 듣기도 했다. 그 일이 있은 후, 또 실수를 하면 어쩌나 걱정이 되어 마음은 점점 위축되어 갔다. 집 생각만 나고 괜히 울적해져서 좋은 것을 봐도 심드렁하고 맛있는 것을 먹어도 입에 달지 않았다. 

음악을 하는 사람끼리의 여행이니 음악으로 뭉쳐질 줄 알았다. 낯선 풍경과 사람들 앞에 악기를 연주하는 시간이 이번 여행의 가장 소중한 추억으로 남을 줄 알았지만 아쉽게 그런 바람은 이뤄지지 않았다. 일정을 끝내는 날이 다가오자 여행궁합이란 말이 왜 있는지, 있을 만한 말이기도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냥 좋지만은 않았던 여행에서의 기억이 떠올라 설레면서도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기도 한다.

때때로 오늘 일도 기억하지 못하는 내 건망증을 자책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가며 다행이라고 느끼는 것 중 하나는 망각이다. 아름다운 추억을 잊는다는 것은 안타깝지만, 나쁜 기억이 잊히는 건 다행스런 일이다. 

불편했던 그때의 기억이 까마득하게 잊혀진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무뎌져 설레는 마음으로 여행을 계획하고 있으니 말이다. 

테이블에 둘러앉은 사람들의 표정은 한껏 흥분된 얼굴이다. 이상하다, 괜찮겠지 하면서도 나는 왜 자꾸 옆 사람과 앞사람의 얼굴을 유심히 살피게 되는 것일까? 궁금하다. 우리의 여행궁합은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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