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잠수기수산업협동조합 김정길 전 조합장

"저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거제에서 나서 자연스럽게 잠수기어업을 경험했고 55년 동안 함께한 직장의 역사가 제 일생의 역사와 겹쳐 그 족적을 책으로 남기는 소임을 다하고 박수받고 떠날 수 있어 감개 무량합니다." 

55년 동고동락한 정든 직장을 떠나며 소회를 밝힌 제1·2구잠수기수산업협동조합 김정길 조합장은 내가 할일은 다 했고 이제 후배들이 계속해서 꿈을 꾸고 실천해 주기를 바라며 뒤에서 응원하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고 덧붙였다. 

김 조합장은 "성내지 마라. 욕심부리지 마라.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공수레 공수거 인생의 의미를 이젠 조금 깨달아 인생 2막을 위해 다시 바다로 돌아갈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1968년 열여덟 어린나이에 잠수기수산업협동조합에 들어가 지난 3월20일 퇴사하기까지 55년 동안 한 곳에서 일하고 있을 때는 그 소중함을 몰랐다. 막상 나와보니 더 잘하지 못한 것이 아쉽고 후회스럽다. 

1·2잠수기수산업협동조합 김정길 전 조합장. @강래선 기자
1·2잠수기수산업협동조합 김정길 전 조합장. @강래선 기자

운명처럼 다가온 잠수기어업과 한평생

어차피 한 번 사는 인생 정답은 없다. 허나 무언가 하나쯤은 족적을 남기고 싶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잠수기어업 100년사 역사의 기록 정리라고 생각하고 시작했다.

협동조합의 정신은 너무나 이상적이고 흠이 없는 완전함 그 자체이다. 일인은 만인을 위해 만인은 일인을 위한다는 존재의 이유가 명확한 조직에서 55년을 살았다. 

누군가는 그 정도 했으면 살아있는 잠수기어업의 역사가 아닌가라는 말을 한다. 55년 중 13년을 최고 수장으로 일했고 나머지는 말단 서기에서 시작해 직원으로서 최고의 자리까지 승진했다. 

솔직히 처음에는 내가 잘 했기에 가능했다는 자만심도 있었다. 허나 조합장 연임 이후는 부질없음을 깨닫고 도망치고 싶은 순간도 있었다. 

최고 수장이라는 직책의 무게로 오해도 받고 거짓이 참이 되는 순간도 경험하면서 많은 깨달음이 있었다. 

자리만 차지하다가는 수장이 아니라 진정한 리더가 돼 잠수기 어업과 잠수기 수협의 공존을 위해 열심히 일한 지도자라는 소리는 못 듣더라도 후배들에게 욕을 먹지는 않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원칙과 소신을 지키려고 노력했다.

그때부터는 잠수기 어업인과 나아가 국가 수산업 발전이라는 큰 바다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를 생각하게 됐고, 그런 취지에서 생각한 것이 잠수기 어업의 정책적 배려와 복지 수협의 기틀을 만들어 나가자는 것이었다.

다행히 글을 쓰는 재주와 기록하는 습관이 남달라 겁없이 시작했고 2년안에 잠수기 어업 100년사와 개인자서전을 세상에 내놓을 수 있었다.

김정길 전 조합장의 이력서 및 자격증. @강래선 기자
김정길 전 조합장의 이력서 및 자격증. @강래선 기자

평안도 출신 아버지와 거제 어머니

평안도 강계가 고향인 아버지는 만주에서 청년시절을 보내다 할머니를 쫒아 거제 장목으로 남하했다. 평안도 출신 할머니가 함경도를 거쳐 거제에 정착할 수 있었던 것은 남편을 여읜 아낙네가 홀로 자식을 키우기 위해 생업으로 해온 객주업이 당시 대구어장의 파시를 이룬 거제로 가면 성공할 수 있다는 어부의 제의에서 비롯됐다.

이것이 그가 잠수기와 함께할 수 있는 인연의 시초였다. 아버지는 큰 뜻을 품고 만주에서 장사를 하다가 할머니가 새로 정착한 거제로 내려왔고 타고난 성실성을 인정받아 잠수기어업을 하는 어머니 집안과 연을 맺어 어부의 길에 들어섰다. 

그는 6.25전쟁 때 태어나 장목초·장목중학교를 졸업했다. 가난한 집안 형편으로 고등학교 진학을 못하고 부산으로 가서 공장을 전전하다 18세에 친형님의 도움으로 잠수기협동조합 말단 서기로 입사했다.

잠수기수협 입사 후 이 조직의 최고 높은 자리까지 오르겠다는 포부를 갖고 야간 고등학교를 다녔다. 주경야독으로 수협 일을 하는데 큰 도움이 되는 주산·부기 등의 공부에 남들 10배 이상의 노력을 경주한 결과 능력과 성실성을 인정받아 주임·참사·과장을 거쳐 직원으로는 최고의 직책인 전무·상임이사까지 올랐다.

결국 2013년 조합장이라는 최고 수장에 올라, 조합 경영정상화는 물론이고 잠수기 어업의 난제를 해결하는데 앞장서 2015년 바다의날 석탑산업훈장과 올해 수산인의 날에는 은탑 산업후장을 수상했다.

2011년부터는 5년 연속 초과배당과 이용고배당을 이뤄 무투표로 3선 조합장에 당선됐고, 올 3월17일 영광스러운 이임식을 끝으로 63년 수협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직원 출신 무투표 3선 조합장, 55년 최장수 수협맨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1·2잠수기수산업협동조합 김정길 전 조합장. @강래선 기자
1·2잠수기수산업협동조합 김정길 전 조합장. @강래선 기자

잠수기조합 평조합원으로 봉사

1962년 통영에서 시작한 1·2 잠수기수협은 경북에서부터 울산 남해까지 이어져 있으며, 조업권을 가진 160여명의 조합원으로 구성된 업종별 수산업협동조합이다. 

이후 일본의 도심형 관광위판장을 벤치마킹해 지난 1963년 부산으로 본소를 옮겼고 2014년 김 조합장이 자갈치시장과 영도대교 인근 관광명소인 지금의 자리에 다시 옮겼다.  

잠수기 어업의 살아있는 역사의 증인인 그가 가장 안타까워하는 일이 있다. 이는 기후변화로 인한 해수 온도 상승에 따른 해저생태계 파괴로 어패류 자원이 줄어들고 잠수기 어업이 설 자리가  줄어들어 신규인력 유입이 원활하지 못한 것이다.

여기에는 여러 원인이 있지만 수산자원 보호라는 이유로 어업규제를 강화하는 잠수기어업 조업구역과 척수 제한 정부정책도 한 몫 하고 있으며 무엇보다 잠수부 인력양성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한 것이다.

그는 장목항 어촌신활력증진사업과 장목항 관광 클러스트 사업과 연계, 잠수기어업의 근간인 잠수사 양성 학교를 세워 거제에 2000년 역사의 잠수기어업의 국내 전진기지가 만들어지면 좋겠다고 밝혔다. 

'청춘은 70'부터라는 말이 괜한 말이 아님을 증명하듯 다시 조합원으로 돌아가 '나의 잠수기 무한 사랑'이 끝나지 않았음을 보여주겠다며 밝은 미소를 짓는 그의 모습에 잠수기 어업의 밝은 미래가 투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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