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일광 칼럼위원
윤일광 칼럼위원

일년중 양기가 가장 강한 음력 5월5일 단오가 되면 해인사에서는 '소금단지 묻기'행사를 한다. 해인사와 마주하고 있는 매화산의 남산제일봉 정상에 한지로 감싼 소금단지를 비장(秘藏)하는 의식이다. 해인사에 화재가 자주 일어나는 까닭은 가람과 마주하고 있는 남산제일봉이 마치 불꽃 형상의 화산(火山)이기 때문이라고 여겼다. 실제로 해인사는 1695년부터 1871년까지 7차례에 걸쳐 큰 화재가 발생했다.

노고단으로 가는 길목에 천은사라는 사찰이 있다. 본래 이름은 감로사(甘露寺)였는데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숙종 때 중건하면서 샘가에 살고 있던 구렁이를 잡아 죽이자 샘이 사라졌다고 해서 '샘이 숨었다'는 뜻의 천은사(泉隱寺)가 됐다.

그 뒤로 절에는 크고 작은 화재가 많았다. 때마침 동국진체를 완성한 원교 이광사 선생이 전라도 땅에 귀양을 와 계셨는데 그분에게 일주문 편액을 부탁했다. 선생은 마치 물 흐르는 듯한 수체(水體)로 글씨를 썼는데 그 후로 불이 나지 않았다. 지금도 고요한 새벽이면 신비롭게도 물소리가 들린다고 한다.

궁궐도 화재에는 취약했다. 이수광의 '지봉유설'에 의하면 경복궁을 마주하고 있는 관악산이 화산이기 때문에 화마를 막기 위한 비법으로 다른 문들은 모두 가로쓰임 편액이나 숭례문만은 불꽃모양의 세로쓰기다. 이열치열의 작전이다.

근정전을 비롯한 궁궐이 중요한 전각의 월대(月臺) 주변에 솥처럼 생긴 커다란 그릇에 물을 담아 두고 있다. 이를 '드므'라고 한다. 드므란 '넓적하게 생긴 큰 독'이라는 뜻의 순우리말이다. 요즘으로 치면 방화수다.

재미난 것은 이 드므가 실용적인 목적보다는 불귀신이 들어오다가 물에 비친 자기 얼굴을 보고 놀라 도망치게 한다는 상징적 의미가 더 컸다. 우리 조상들의 뛰어난 은유와 상징이다. 요즘 건조한 날씨로 산불재난 국가위기 경보가 발령 중이다. 불은 조심이 최고의 비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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