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일광 시인
윤일광 시인

그리스신화에 나르키소스라는 잘 생긴 청년이 있었다. 나르키소스의 사냥모습을 본 숲속의 림프 에코(Echo)가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에코는 헤라의 저주에 걸려 말을 할 수 없었다. 언젠가 헤라 앞에서 수다를 떠는 동안 제우스신이 바람을 피우는 일이 생겼다. 헤라는 이 일이 에코의 수다 탓이라고 여기고 내린 벌이었다.

에코는 사랑의 고백으로 나르키소스의 뺨에 키스를 했다. 그러나 나르키소스는 단박에 거절하며 물리쳤다. 수치심으로 에코는 동굴에 들어가 아무 것도 먹지 않고 굶어 죽었고, 아름다운 목소리만 메아리(에코)로 남게 됐다.

어느 날 사냥을 하다가 목이 말라 샘에 엎드려 물을 마시려고 할 때 물 속에 비친 자기 얼굴을 봤다. 너무나 매혹적인 자신의 모습에 반해 샘가를 떠나지 못하다가 결국 죽고 말았다. 그가 죽은 자리에서 한 송이 꽃이 피었는데, 그것이 바로 수선화(水仙花)다. 꽃말은 자기사랑이다. 정신분석에서 자기애를 뜻하는 나르시즘은 나르키소스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나르키소스의 신화는 자신만을 사랑하기에 바쁜 현대인의 자화상을 은유하고 있으며, 어쩌면 모든 인간들이 공통적으로 범하고 있는 오류를 상징인지도 모른다.

3월의 꽃은 수선화다. 이때쯤 전국의 관광객이 바다위의 꽃밭 공곶이 수선화를 보기 위해 찾아온다. '외포는 대구, 대금산은 진달래, 학동은 몽돌' 이런 식으로 공곶이는 수선화가 트레이드마크다. 그런데 올해는 꽃이 없다. 내도가 보이는 공곶이 고갯길을 내려서면 노란 수선화밭이 그림처럼 펼쳐져야 하는데 무슨 폭탄 맞은 땅처럼 황폐하기 이를 데 없다.

힌남노 태풍 때문이란다. 그런데 그게 작년 8월의 일이니 핑계가 되지 못한다. 꽃밭을 가꾸던 할아버지가 아프기 때문이라는 게 더 솔직한 이유일 것이다. 공곶이는 개인이 일궜지만 이제는 거제9경으로 지정된 공공의 관광지다. 언제까지 할아버지의 손에만 맡길 것인가. 참 딱한 거제관광의 현주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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