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청면 칠천도 황덕마을 허경식 전 이장

거제시 하청면 칠천도 황덕마을 허경식 전 이장. @강래선 기자
거제시 하청면 칠천도 황덕마을 허경식 전 이장. @강래선 기자

황덕도(黃德島)는 거제에서 가장 큰 부속 섬인 칠천도에 딸린 유인도다. 기름진 황토와 마을 사람들의 평균 수명이 길어 누른등·장수섬으로도 불리기도 한 황덕도는 거제도와 남해안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작은 바닷가 마을이다. 

하지만 흔하디 흔한 작은 어촌마을은 지난 1986년부터 37년간 장기집권(?)을 이룬 허경식(82) 이장을 보유한 마을이기도 했다.

지난 1987년 당시엔 거제지역 마을 이장중 가장 젊은 40대 이장이었던 그는 지난해 12월31일을 끝으로 37년 동안 이어오던 장기집권을 마무리했다. 

지난 37년간의 이장 생활은 단순히 17호가 올망졸망한 작은 어촌마을 이장의 삶이 아닌 청춘과 애환이 서린 세월이었다. 그 모든 추억을 남기고 올해 초 육지로 나온 까닭도 최선을 다한 후회 없는 삶이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거제시 하청면 칠천도 황덕마을 허경식 전 이장. @강래선 기자
거제시 하청면 칠천도 황덕마을 허경식 전 이장. @강래선 기자

장기집권의 시작, 이장은 잘해봐야 본전

칠천연륙교를 지나 10여분을 달리다 만나는 황덕도는 칠천도 본섬과 250m 남짓 떨어져 있다. 지난 2016년 연도교가 완공되기 전까지 뱃사공과 도선의 도움 없이 왕래하기 힘든 곳이었다.

당시만 해도 뱃사공 월급으로 보리 300되(540ℓ)를 줘야 했지만 이마저도 나서는 사람이 없어 주민들이 돌아가며 사공을 해야 했단다.

이장 장기집권의 시작은 건강 때문이었다. 오랜 어부생활로 건강이 악화돼 생업인 어부 일을 할 수 없게 되자 마을주민들의 권유로 이장을 하게 된 것이다.

37년 장기집권에 대한 기록과 평가는 마을 사람들이 하겠지만 예나 지금이나 마을 이장은 '잘해야 본전'이라는 공식만큼은 변함이 없다. 

그동안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지난 일들을 추억할 만한 기록은 황덕마을 경로당(마을회관)에 고이 모셔놓은 마을 장부다. 이장 재임 초기부터 수십년을 빼곡하게 기록한 장부에는 황덕마을 대소사는 물론 밥숟가락 개수까지 세세히 기록돼 있다. 

그가 이장직을 맡아 마을 발전을 위해 한 일은 대략 54가지인데, 대표적인 사업은 황덕도를 잇는 연도교 설치와 해안도로 포장, 그리고 마을 상수도 공사였다. 

특히 황덕도와 칠천도를 잇는 연도교는 계획부터 완공까지 그의 땀방울이 서린 사업이다. 당초 계획은 예산상 문제로 걸어서 건널 수 있는 보도교로 계획했지만 미래를 위해 차량 통행까지 가능한 다리로 만들어 달라는 그와 마을주민의 강력한 요구가 반영된 결과이기도 했다. 

또 매미 태풍으로 유실된 해안선 도로를 확장 포장하는 도로공사도 기억에 남는 사업 중 하나다. 황덕도의 해안선 길이는 약 3.6㎞. 이를 개보수해 마을주민 이동에 편의를 제공하고 관광객 유입에 큰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마을주민을 위한 상수도 연결공사도 씻을 물은 고사하고 식수마저 부족했던 섬사람들의 불편함을 덜어준 고마운 사업이었다. 

거제시 하청면 칠천도 황덕마을 허경식 전 이장 활동 당시의 마을주민 건의서. @강래선 기자
거제시 하청면 칠천도 황덕마을 허경식 전 이장 활동 당시의 마을주민 건의서. @강래선 기자

박수칠 때 떠나는 진돗개 이장 

그는 평생의 숙원사업인 다리 개통식 날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린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고 회상하면서 또다시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거제도 최장수 이장 타이틀보다도 마을 사람들이 붙여준 진돗개란 별명을 더 좋아한다. 그만큼 성실과 신뢰를 인증받고 한번 물면 놓지 않는 민원해결 능력에 마을주민들이 붙여줬기 때문이다. 

그가 이장을 맡아 활동한 황덕마을은 황덕도의 지부리·암몰·새시 등 3개 촌락과 칠천도의 나룻배 출발지인 고다리 촌락 등 4개 촌락으로 구성돼 있다.

그는 고다리 출신이다. 그곳에서 태어나 가정을 이뤘고 자식을 키웠다. 30대부터 기선권현망 멸치잡이 선단 기관원으로 일하다 돈을 모아 배를 구입, 재산을 늘려나갈 때 건강이 나빠져 더 이상 배를 탈 수 없었다. 

몸을 추스르기 위해 요양하고 있을 때 마을 어르신 한 분이 마을 이장을 한 번 해보지 않겠냐고 제의했다. 

막상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놀기는 경제적 어려움이 있었기에 이장을 흔쾌히 수락했고, 처음 하는 마을 이장이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장을 맡아 가장 많이 한 일이 하루에도 몇번씩 나룻배를 타고 마을주민의 발이 된 일이다. 

초창기만 해도 황덕도에서 장승포 읍내로 가려면 하루 반나절이 걸렸다. 섬 주민들이 직접 노를 저어 칠천도 고다리 촌락에 도착한 후 비포장도로를 몇 시간 걸어 칠천도 도선장에 갔다가 다시 도선을 이용해 거제도 본섬에 내린 후 완행버스를 타고 장승포로 가던 시절이었다.

생필품과 아이들 학용품 그리고 잡은 수산물을 팔기 위해서는 섬 밖을 나가야 했다. 그가 도선을 운행하지 않으면 해결할 수 없는 일이다. 

당시에는 섬 주민들이 돌아가며 노 젓기를 담당하기도 했는데, 때로는 부녀자들도 노를 저었다고 지난 일을 회상했다.

그는 섬 주민 대부분이 노인이거나 혼자 살고 있어 병원 등 나들이하기가 힘들었는데 연도교 개통으로 불편이 해소되니 얼마나 기뻤는지 그날의 벅찬 감동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했다. 

그는 평소 '박수칠 때 떠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고 지난 연말 최장수 이장 타이틀을 내려놓았다. 

노인들만 사는 섬에 그래도 젊은 청년에 속하는 분이 이장을 해보겠다고 해서 다 물려주고 도와주는 조력자 역할만이 오롯이 그의 몫으로 남았다. 

그는 "인생 80이 되어 보니 건강이 최고이며 돈·권력·명예는 다 부질없는 모래성이라고 말했다. 너무 아등바등 살지 말고 주변을 둘러보고 어려운 사람이 있으면 먼저 손을 내밀어 주는 넉넉함을 가지라고 조언"해 주고 싶다며 살며시 웃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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