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둘순 한국여성어업인연합회 사무총장, 거제분회장

한국여성어업인연합회 이둘순 거제분회장. /사진= 강래선 인턴기자
한국여성어업인연합회 이둘순 거제분회장. /사진= 강래선 인턴기자

"17세 꽃다운 나이에 처음 경험한 바다는 엄마의 품속 같은 평안 그 자체였습니다. 같이 물질을 배운 언니는 바다가 무섭고 두렵다고 했지만 저는 깊은 바닷속이 주는 고요한 울림과 광활함이 너무 좋았습니다."

제주에서 2대째 해녀의 삶을 살아온 집안 2남6녀 둘째 딸로 태어나 여섯살 때 거제에 정착한 후 어머니한테 배운 물질이 천직이 됐다는 이둘순(60) 한국여성어업인연합회 거제분회장.

40년 동안 수산업이 천직이라 여기고 바다와 함께한 이 회장은 바다를 떠난 삶은 상상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 회장은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초등학교 졸업 후 할머니를 도와 미역을 채취해 말려 장에 내다 팔고 이후에는 자연스럽게 물질을 배워 해녀가 됐다.

어린 마음에 고생하는 부모님을 도와줄 수 있다는 생각에 힘든 줄도 모르고 일했고 좋아하는 일을 하니 실력도 일취월장 인정받는 직업인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고 했다.

이둘선 회장의 사회활동 모습. /사진= 이둘선 회장 제공
이둘선 회장의 사회활동 모습. /사진= 이둘선 회장 제공

수산업이 맺어준 평생 동반자

"수산업 자체가 원래 기복이 심합니다. 자연을 상대로 사람이 하는 일이다 보니 흥하고 망함이 본인의 의지와는 별개로 흘러갈 수도 있습니다."

당시 거제에서 해녀 30명을 두고 배를 운영하던 어머니 일이 잘되지 않아서 전라도 섬으로 키조개를 잡으러 갔다가 기관 고장으로 수리를 하기 위해 들렀던 곳에서 지금의 남편을 만나 스물한 살 어린 나이에 가정을 꾸리게 됐다.

이 회장의 남편은 고향 거제를 떠나 전라도에서 배를 수리하는 기술자로 살다가 결혼 후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대구잡이 배 선장으로, 자신은 나잠업을 하는 부부 어업인으로 40년을 이어 오고 있다.

처음부터 가진 것이 없었기에 잃을 것도 없다는 일념으로 어선 어업에 도전했고 23년을 거제에서 창원 잠도로 배를 타고 가서 물질을 하는 억척스러움으로 집도 장만하고 경제적 안정을 이뤄냈다.

이둘선 회장의 사회활동 모습. /사진= 이둘선 회장 제공
이둘선 회장의 사회활동 모습. /사진= 이둘선 회장 제공

그러나 인생은 늘 좋은 일만 있을 수는 없는 게 인지상정이라고 2008년 인생 첫 위기에 봉착했다. 그동안 몸을 돌보지 않고 혹사한 것이 화근이 되었는지 이유를 알 수 없는 피곤함에 병원을 찾았는데 덜컥 암을 선고받았다. 그때야 부모님이 암으로 돌아가신 가족력이 떠올랐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불행중 다행으로 수술은 잘됐지만 더이상 바닷일은 하지 말라는 의사의 권유로 일을 접기로 마음먹고 난 뒤부터 찾아온 불면증과 우울증으로 한동안 힘든 시기를 보냈다는 이 회장.

그때 든 생각이 자신을 제일 잘 아는 사람은 자신뿐이다. 모든 사람은 다 죽는다, 단지 언제 죽을지 모르고 살 뿐이다. 일하지 않고 사는 인생은 죽은 인생이라는 생각이 들어 의사의 권유는 참고삼아 나잠업을 접고 정치망 어업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한국여성어업인연합회 이둘순 거제분회장. /사진= 강래선 인턴기자
한국여성어업인연합회 이둘순 거제분회장. /사진= 강래선 인턴기자

위기는 기회의 또다른 이름

암 선고 이후 그녀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은 180도 달라졌다. '하루하루를 즐겁게 살자', '세상일은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긍정적 사고로 삶을 바꾸고 난 뒤 또 다른 세상이 보였고, 그때부터 봉사활동에 더욱 매진하게 됐다고 한다.

그녀가 지금 맡은 공식 직함은 한국여성어업인연합회 사무총장·거제시분회장·삼양수산 대표이사 등 1인 3역이다.

일이 좋고 늘 바쁘게 사는 것이 좋다고 말하는 그녀가 가장 행복하다고 느끼는 일은 봉사활동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삼양수산이 위치한 장목면 궁농마을 공장은 거제수협 75개 어촌계에 반찬 봉사를 위한 작업장으로 개방돼 있다. 여기서 만든 반찬은 독거노인와 장애인들에게 제공된다.

이외에도 겨울철 김장 봉사와 해안 쓰레기 수거 작업 등 일손이 필요한 곳에는 언제나 여성어업인 회원들과 함께 참여하고 있다.

이둘선 회장의 사회활동 모습. /사진= 이둘선 회장 제공
이둘선 회장의 사회활동 모습. /사진= 이둘선 회장 제공

또 코로나19로 지난 2년 동안 행사를 못했지만, 매년 1월1일 해돋이를 보기 위해 장목면을 찾아오는 관광객과 지역민을 위해 사비를 들여 300인분의 떡국 대접을 해왔다. 내년 1월1일에는 다시 할 예정이라며 홍보를 부탁했다.

20년을 이어온 봉사활동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무엇인지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이 회장은 "장애인 시설에 봉사활동 가서 그분들에게 무엇을 도와주면 좋겠냐고 물었더니 같이 놀아달라는 답변에 조금은 놀랬지만 손잡고 노래 부르고 춤추고 놀면서 그들보다 제가 더 큰 위안을 받고 온 것이 기억에 남는다"고 답했다.

누군가의 어머니이면서 또 누군가의 아내로 40년을 잘 살아온 그의 인생이 빛을 발한 일이 지난해 있었다. 그는 거제 여성어업인으로는 최초로 제11회 수산인의 날 기념식에서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일하는 것이 즐겁고 살아있다는 행복감을 준다는 이둘선 회장은 아직도 자신을 찾는 사람이 있어서 행복하다며 다음 약속이 있어 양해를 구하며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작은 거인이 생각난 것은 우연이었을까 하는 반문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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