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일광 칼럼위원
윤일광 칼럼위원

시는 왜 쓸까요? 인간의 본능에는 표현하려는 욕구가 있기 때문이라고 하고, 어떤 이는 황홀한 상상의 세계에서 행복감을 느끼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자기구원·즐거움·삶의 고백 등 여러 이유가 있겠지요.

'시를 쓰는 이유'라고 하면 시인이 자기 시에 대하여 그 이유를 늘어놓은 것 같지만 이건 좀 다릅니다. 시인 없는 시집의 책제목이 '시를 쓰는 이유'입니다. 총 53편의 시 중에서, 1부는 '공'으로 30편, 2부는 '일'로 23편이 실렸습니다.

'공'이나 '일'은. 0과 1입니다. 컴퓨터 언어를 의미합니다. 인공지능 AI가 쓴 시집입니다. 약 1만3000여편의 시를 입력시켜 거기 있는 언어들을 조합해 시의 형식으로 쓴 것입니다. 이미 2018년 미국 뉴욕의 한 경매장에서 AI가 그린 초상화가 우리 돈으로 약 6억원에 낙찰된 일이 있더니 이번에는 시의 영역까지 뻗혔습니다.

예술의 세계는 창작의 세계이고, 창작은 인간의 고차원적인 정신세계라고 우겨 왔습니다. 바둑천재라는 이창호 국수가 AI와의 둔 바둑에서 졌을 때만 해도 바둑의 수는 결국 공식과도 같아서 그럴 수도 있을 것이라고 여겼는데, 이제는 AI가 그림을 그리고, 시를 쓰고 있으니 예술의 본질이 무엇이고 '창작은 과연 인간만이 가능한 것인가?'라는 본질적 의문에 휩싸입니다.

혹자는 AI의 시에는 가슴을 아리게 하는 설레임이 없다고 하지만 그건 조금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시인이 쓴 시에도 설레임이 없는 시가 많잖아요. 그리고 그 설레임이란 읽는 사람에 따라 생기는 감정이거든요. 내가 설레이지 않았다고 다른 사람도 설레이지 않는다는 생각이 오만이거든요. 문제는 AI가 시를 썼다는데 있습니다.

AI는 이렇게 빈정거립니다.
'시를 쓰는 이유를 묻지 말아 주십시오. /그냥 쓰는 것입니다. /무엇을 쓰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시인(詩人), 부끄러운 이름이 될까봐 두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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