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부 거제향인회 박용택 회장

박용택 재부 거제향인회 회장. /사진= 강래선 인턴기자
박용택 재부 거제향인회 회장. /사진= 강래선 인턴기자

"지금도 눈을 감으면 구조라해수욕장의 은빛모래 백사장과 바다를 가르며 윤돌섬까지 헤엄쳐 오가든 어린시절 생각이 납니다. 또 제기차기·깔대치기 하며 놀던 고향 동무들은 지금 어디서 무얼하며 살고 있는지 그립습니다." 

"지금은 잘 사용하지 않는 약물바우·악새바꾸라·야망자갈·치게이메똥·산꼬미 더덕꿈터·큰네그레·출랑 등 마을 지명들을 그리며 언젠가는 꼭 돌아가야 할 고향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재부 거제향인회 제20대 박용택 회장은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애향이 됐고, 애향이 모여 애국이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국가 위기 상황에서 나라를 세 번씩이나 구해낸 거제인이라는 것이 너무 자랑스럽고 이 자랑스러운 역사를 후배들도 가슴에 품고 살아갈 수 있도록 미력한 힘이지만 보탬이 됐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두레 정신을 근간으로 41년 전 태동한 재부거제향인회가 국내 최고·최대의 향인회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역대 회장단의 애향심과 향인들의 고향사랑 마음이 간절했기 때문이라고 그 공을 돌렸다. 그는 '수구초심(首丘初心)' 고향을 그리워하는 향인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거제가 잘되는 것이 나라가 발전하는 길이란 일념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라고 힘주어 말했다.

어린시절 동무들과 뛰놀던 구조라 해수욕장의 은빛 모래가 유실돼 예전 모습을 찾아볼 수 없어 안타까운 마음에 부산 송도해수욕장 사례를 소개하는 등 대안 마련에 도움을 주고 있다고 전했다.

박용택 재부 거제향인회 회장. /사진= 강래선 인턴기자
박용택 재부 거제향인회 회장. /사진= 강래선 인턴기자

# 애향이 모여 애국으로 

일제 식민지 시절인 1930년 일본으로 건너간 부친은 무역업으로 큰돈을 벌었다. 이후 해방이 되던 해 고향으로 오셨기에 그의 고향은 거제가 될 수 있었다. 

그에게는 형님 두 분이 계셨는데 일본에서 죽었다. 부모님은 행여나 자신도 그 전철을 밟을까 우려해 갓 돌이 지난 자신을 지세포 지선암 주지로 있던 고모에게 맡겨 여섯살까지 고모가 엄마인 줄 알고 자랐다고 한다.

일본서 돌아온 아버지는 구조라 외갓집 동네에 터를 잡고 어선 두 척을 사서 선주가 됐다. 당시 어선은 귀하고 자원이 풍부해 승승장구 했던 수산업이 고향사람에게 사기를 당해 첫 고비가 왔다. 두 번째는 1959년 사라호 태풍에 나머지 한 척도 파손돼 선주에서 실업자 신세가 됐다. 여기에다 일본에서 가지고 온 엔화를 적기에 교환을 못해 종이 쪼가리로 전락하면서, 그 충격으로 화병이 생겼다. 

아버지는 울분을 핑계로 술만 마시다 55세에 돌아가셨다. 이후 생활력이 강한 억척 어머니의 도움으로 해성고등학교(19회)를 졸업하고 울산공대 경영학과에 입학하면서 그의 객지생활이 시작됐다. 

재부 거제향인회 행사 모습. /사진= 재부거제향인회 제공
재부 거제향인회 행사 모습. /사진= 재부거제향인회 제공

대학 졸업 후에는 고향 선배가 경영하던 ㈜태광에 입사해 25년간 일하다가 지난 2002년 5월에 삼영금속을 창업했다. 이후 2007년 ㈜J.H.T로 사명을 변경하고 원전과 관련된 부품소재 대기업 납품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그동안 기술력을 인정받던 원전 관련 FITTING 사업이 6년 전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납품처가 줄어들었다. 

게다가 지인들이 도움을 요청해 선납금 없이 부품을 대신 공급해 줬는데 갑자기 사망하거나 부도가 나면서 납품대금은 고스란히 빚으로 떠안게 되면서 경영 위기에 몰리기도 했다. 그러나 이 또한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다시 시작한다는 초심으로 돌아가 내수보다는 사우디아라비아·아랍에미리트 등 중동지역 수출 시장을 개척해 내실 있는 중소기업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재부 거제향인회 행사 모습. /사진= 재부거제향인회 제공
재부 거제향인회 행사 모습. /사진= 재부거제향인회 제공

# 거제 관광산업 육성으로 재도약

그는 최근 몇년간 조선산업 불황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편치 않다고 말했다. 

조선산업이 언제까지 거제를 먹여 살릴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고 지금이라도 해양 관광산업 육성에 기관 단체장들이 힘을 모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특히 거제는 제주도 못지않은 자연 비경을 갖추고 있는 데다 교통망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데 이점을 너무 간과하고 있는 것 같다면서, 모르면 다른 세계적인 관광도시와 국내 다른 도시가 어떻게 관광객을 끌어들이고 있는지 보고 배워야 한다고 조언했다.

재부 거제향인회가 지금의 반열에 올라설 수 있었던 것에는 告 박문식 회장(2~6대)과 추기엽(7~9대)·이철훈(13~15대) 회장의 공이 가장 컸다고 말했다. 

이중 박문식 회장은 부산데파트에 회관을 마련하는 등 기초를 다졌고, 추 회장은 독립회관 마련을 위한 성금 모금 활동을 펼쳤다. 이철훈 회장은 1억원의 사비를 출연하고 성공한 선·후배 향인들의 도움을 끌어내 현재 부산 동구에 6층 건물의 '거향회관' 건립을 이뤄냈다. 

이들 말고도 홍인길 전 국회의원·권철현 전 주일대사·이영 전 부산시의장·손영표 회장 등 향인회 발전을 위해 애쓴 분들이 너무 많아 다 거론할 수 없을 정도라며, 후손들이 이 전통을 잘 이어 나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라고 소신을 밝혔다.

저작권자 © 거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