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일광 시인
윤일광 시인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이었다. 염소고삐를 쥐고 있었는데 갑자기 염소가 달리기 시작했다. 고삐만 놓으면 될 일을 신작로를 질질 끌려가면서도 고삐를 놓지 않았다. 무릎이 깨어져 피범벅이 됐다. 그때의 상처진 흔적이 아직도 내 무릎에 남아 있다. 그 후로 내가 가장 무서워했던 동물은 염소였다. 이 나이에도 큰 염소를 보면 섬뜩해진다.

중국 양쯔강(揚子江) 이남을 강남지방이라 하는데 하류 쪽에 오(吳)나라가 있었다. 고온다습해 한낮이 되면 무더위 때문에 소들이 지쳐 숨을 헐떡거렸다. 그런데 달이 뜨면 달을 해로 착각하여 소가 숨을 헐떡거렸다. 그래서 생겨난 말이 오우천월(吳牛喘月)이다. '오나라 소는 달만 보아도 숨을 헐떡인다'는 뜻이다.

우리 속담에 '뜨거운 국에 데인 사람은 냉채국도 불어서 먹는다' '고슴도치에 놀란 호랑이 밤송이 보고 절한다' '뱀한테 놀랜 사람 두레박줄 보고도 놀란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 등의 말이 있다. 충격적인 외상사건을 경험하고 난 후 나타나는 심리적 부작용으로 트라우마(trauma)라 부른다.

이런 트라우마를 정신의학이나 심리학에서는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라 한다. 이는 전쟁이나 자연재해 같은 사건뿐 아니고 타인에게 당한 신체적 폭력이나 정서적 학대도 있고, 작게는 배탈로 고생했던 음식은 보기만 해도 속이 울렁거리기도 한다.

'톰소여의 모험'을 쓴 미국 소설작가 마크 트웨인이 말했다. '뜨거운 난로 뚜껑에 앉아 놀란 고양이는 식은 뚜껑에도 앉지 않으려고 한다.' 어떤 일을 한번 겪고 난 다음 거기서 오는 트라우마 때문에 미리 겁먹고 포기하는 경우가 생긴다. 경험이 삶에 얼마나 중요한가를 일깨워주고 있다.

문제는 동일한 외상사건을 경험했다 하더라도 어떤 사람은 쉽게 이겨내는 반면, 어떤 사람은 부정적 정서로 삶에 지장을 주기까지 한다. 중요한 것은 한번 실패했다고 미리 겁먹고 포기하지 않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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