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이와 이순신은 덕수 이씨(德水李氏) 종친이다. 율곡이 병조판서일 때 하급군관이었던 이순신에게 만나자고 전갈을 넣었다. 요즘으로 치면 국방부장관이 일개 소대장을 부른 것이다. 이 영광스러운 회동을 이순신은 거절한다. 아무리 문중 일가라 해도 인사권을 쥔 사람과 사사로이 만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이유였다.

조선시대 분경금지법이라는 것이 있었다. 권세가 높은 친척집을 드나들며 청탁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이다. 분경(奔競)은 분추경리(奔趨競利)의 줄임말로 '분주히 쫓아다니며 이익을 추구한다'는 뜻이다. 요즘으로 치면 '공직자 등에 대한 부정청탁 및 공직자 등의 금품 등의 수수(收受)를 금지'하는 일명 '김영란법'이라 할 수 있다.

조선 성종 때 완성한 '경국대전'에 친가는 8촌, 외가와 처가는 6촌 이내로 그것도 혼인한 자와 이웃에 가까이 있지 않으면서 당상관이나 주요 관원의 집을 출입하는 자는 분경으로 보아, 장(杖) 100대와 유형에 처했다. 그래도 암암리에 분경이 그치지 않자 숙종 때에는 6촌 이내, 외가는 4촌 이내로 더 강화했다.

다만 한 가지 예외가 있었다. 문중제사 때에는 종친이면 누구나 참석해서 만날 수 있었다. 일년에 한두 번 이때 일가 챙기기가 시작된다. 흔히 하는 말로 '묘를 잘 쓰면 조상의 음덕을 입는다'고 했는데 조상을 빙자해 이루어지는 분경인 것이다.

조정에서는 관리들에게 사불삼거(四不三拒)의 정신을 청백리의 기준으로 삼았다. 사불(四不)은 부업하지 않고, 땅 사지 않고, 집 늘리지 않고, 부임지의 특산물을 착취하지 않는 것이다. 삼거(三拒)는 윗사람의 부당한 요구를 거부하고, 일을 처리함에 답례를 거절하고, 경조사에 부조를 받지 않는 것이다.

민주주의 꽃인 선거가 끝났다. 이제부터 분경의 시간이다. 선거에 도움을 준 자에 대해 혜택을 주는 엽관제(獵官制)는 민주국가에서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치더라도, 깜냥이 되지않는 사람들이 설치니 그게 문제다.

저작권자 © 거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