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서에 기록되기를 ‘안영의 키가 여섯 자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때의 한 자(尺)는 지금의 22.5cm 가량이었으니, 물론 시대마다 척도가 다르다 하더라도 안영의 키가 140cm 정도였을 것으로 보고 있다.

안영이 초나라에 사신으로 갔을 때였다. 초왕 영왕은 키 작은 안영을 초반부터 제압하기 위해 대문은 닫아놓고 개나 드나드는 작은 문을 만들어 놓고 거기로 들어오라 했다. 안영이 “개나라에 왔으니 개구멍으로 들어가야지요.” 초왕이 이 말을 듣고 놀라 큰문을 열어준다.

안영을 보자 초왕이 키 작은 걸 빗대어 “제나라에는 인재가 없는 모양이지. 자네 같은 사람을 사신으로 보낸걸 보면” 그러자 안영이 “저희 나라에서는 사신을 보내는 데는 원칙이 있습니다. 큰 인재는 큰 나라에 보내고, 작은 인재는 작은 나라에 보냅니다. 저같이 키 작고 형편없는 인물은 형편없는 나라에 가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러니 왕께서는 너그러이 용서해 주십시오.”

어느 날 안영의 수레가 마부의 집 앞을 지날 때였다. 마부의 아내가 그 광경을 보았다. 저녁에 마부가 집에 왔을 때 아내가 이혼을 요구했다. 마부가 놀라 그 까닭을 묻자 아내는 “안영은 키가 6척밖에 안되지만 제나라의 재상이 되었고, 겸손하여 모든 백성들이 존경을 받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키가 8척이면서도 겨우 남의 마부주제에 자기가 마치 대감이라도 된 듯이 수레에 앉아 뻐기는 모습을 보니 내가 신랑을 잘못 만난 것 같네요.”

비록 키는 작았지만 안영(晏嬰)은 춘추시대 제나라를 천하의 강국으로 만든 명재상으로, 중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정치인 중 한명으로 꼽힌다. 그에게 안자(晏子)라는 경칭이 붙은 인물이다. 사마천이 말하기를 만일 자신이 안영과 같은 시대에 살았다면 마부가 되어 채찍질하는 것을 자랑스레 여길 것이라고 공언할 정도였다.

키가 작다고 상심할 필요는 없다. 키 작은 사람이 오래 산다는 연구결과도 있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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