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의회에서 어떤 초선의원이 청산유수로 연설하고 나서, 연설의 대가인 윈스턴 처칠에게 다가와서 자기 연설에 대한 평가를 부탁했다. 멋진 연설이었다는 칭찬을 기대했는데 대답은 의외였다. "다음부터는 좀 더듬거리게, 사람들은 좀 부족한 듯한 사람을 더 좋아한다네."

중국 초나라 때의 일이다. 제사를 지낸 뒤 하인들에게 술을 마시라고 주었는데 양이 딱 한 사람이 마실 정도였다. 그래서 하인들이 땅에 뱀을 먼저 그리는 사람이 술을 차지하기로 했다. 한 사람이 뱀을 먼저 그리고 나서 한손으로 술병을 잡은 채 "나는 발까지 그릴 수 있다네" 하며 발을 그려넣었다. 그런데 나중에 뱀 그림을 완성한 사람이 "다리가 있으면 뱀이 아니거든" 하며 술을 차지했다. 전국책(戰國策)에 나오는 화사첨족(畵蛇添足)의 고사로 이를 줄여 사족(蛇足)이라 한다.

'적당히'의 사전적 풀이는 어떤 조건이나 이치 따위에 들어맞거나 어울리도록 알맞은 것을 말한다. 술을 마시되 취하지도 맹맹하지도 않고, 소금을 넣되 짜지도 싱겁지도 않는 상태다. 과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는 것이 '적당히'다.

우리말에 '애매(曖昧)하다'와 '모호(模糊)하다'가 있다. 통칭 '애매모호하다'라고 쓰고 있지만 이 둘은 엄연히 다르다. '잘 생긴 김 박사의 아들'에서처럼 김 박사가 잘 생긴 건지 아니면 그 아들이 잘 생겼다는 말인지 이것인지 저것인지 헷갈리는 것은 '애매'한 것이고, '돈이 많다'고 했을 때 어느 정도 돈이 있어야 많은 건지 기준자체가 불분명한 것은 '모호'이다.

적당히는 도대체 어느 정도일까? 있다고 교만하지 않고, 없다고 비굴하지 않는 그 접점을 찾는 일은 어렵다. 어쩌면 영원한 이상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당히'가 비록 애매모호한 기준이라 할지라도 우리 삶에 있어 최고의 가치가 돼야 할 것이다. 다만 오늘날 '적당히'라는 좋은 말이 '눈치껏' '대강 철저히' '알아서 해라' 따위로 변질돼버린 게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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