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혼례에서 신랑집에서 신부집에 미리 예물을 보내는 절차를 납폐(納幣)라 한다. 이때 혼서지와 채단 등을 넣은 함(函)을 지고 가는 사람을 함진아비라 한다. 신랑의 친인척 중에서 예의범절에 바른 어른이 앞장서고 함진아비는 복수(福手)라 해서 하인 중에서 가장 복이 있다고 여길만한 사람이 뽑힌다.

함 안에는 가장 중요한 혼서지(婚書紙)가 들어간다. 혼서지는 신랑의 아버지가 신부의 아버지에게 보내는 편지다. '귀한 따님을 곱게 키워서 부족한 자식과 짝을 지어주시니 감사하다'는 인사와 신랑쪽 가문에 대한 소개가 적혀 있다. 혼서는 신부가 사주단자와 함께 평생동안 보관했다가 죽어 관속에 넣고 간다. 혼서지는 귀밑머리 푼 본처만이 받을 수 있다.

채단(采緞)은 예식 때 입을 신부의 옷감이 될 청색과 홍색의 비단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봉채(封采)라 한다. 청색과 홍색은 음양을 의미하고 비단을 묶은 끈은 잡아당기면 한 번에 풀 수 있는 매듭으로 돼있다. 이는 결혼생활이 술술 풀리라는 뜻이다. 이밖에 살림이 넉넉한 집에서는 예물을 더 넣는데 이를 적은 물목기(物目記)와 다섯 가지 색깔의 씨앗을 담은 오방주머니도 들어간다. 부부의 궁합을 적은 사주지도 함께 들어간다.

함진아비는 신부집에 들어가기 전에 "함 사시오"라고 외친다. 신부집 사람들이 나와서 밀고 당기면서 흥정을 하며 소란을 피운다. 그러는 동안 동네 사람들이 나와 구경하므로 혼사를 소문내는 역할을 했다. 드디어 못이기는 척 들어가서 함을 대청 위에 시루째로 놓여 있는 봉채떡 상위에 올려놓음으로 임무는 끝난다. 이때 수고했다고 얼마간의 노잣돈을 주는데 이 풍습이 근래 와서 함을 판다면서 동네를 시끄럽게 하다가 민원을 일으키기도 한다.

1991년 사시 2차 시험을 사흘 앞두고 친구를 위해 대구까지 내려가 '함진아비'를 한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의 일화로 보아 90년대까지 흔하게 볼 수 있었던 풍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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