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수 거제신문 서울지사장
김철수 거제신문 서울지사장

정제되지 않은 거친 언어들이 난무한다. 온갖 매체를 통해 거침없이 쏟아지는 언어들은 폭력에 가깝다. 선거철임을 감안해도 선거철이 끝나고 나면 이 언어폭력들이 삶에서 커다란 상처로 남아 두고두고 문제를 야기하게 될 것이다.

언어의 사전적인 의미는 '언어(言語). 음성 또는 문자를 수단으로 하여 사람의 사상·감정을 표현하고 의사를 전달하는 수단과 체계'이다.

인간에게 언어만큼 강력한 무기는 없다. 하지만 인간의 생각 또한 온갖 언어적 전제와 신념에 매여 있다. 우리의 판단 기준·가치관·선입견 등은 언어의 울타리를 벗어나기 힘들다.

개인의 좌우명·가훈·교훈·사훈·슬로건 등은 몇 개의 단어로 표현한다. 문제는 이런 언어적 명제들이 삶의 복잡성과 상호성을 너무 단순하게 환원시켜 버린다. 수많은 오해와 편견이 바로 우리가 굳게 믿는 신념 때문에 발생하는데, 이 신념들은 언어들의 틀에 갇혀있다.

다른 이의 말을 듣고 있으면, 마치 그 사람이 그 말처럼 사는 것처럼 들린다. 우리도 자신에 대해 어떤 말을 많이 하다보면, 마치 자신이 그 말처럼 살고 있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자기가 한 말에 대한 의미를 확대하는 인지적 오류에 빠질 수 있다. SNS에 표현된 누군가가 실제 그가 아니듯, 말과 글로 나타난 우리의 삶은 실제 우리의 참 모습과는 거리가 있다.

말과 글, 그 사이에 언어로 감추고 포장하고 속이고 있는 그 이면에, 각자 삶의 민낯이 놓여있다. 우리는 그것과 마주해야만 한다. 그것이 실제며 진실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말은 진실이 아니며, 사실은 바로 삶이다.

'0의 적은 0이다'라는 말이 회자되고 있다. 어느 사람이 많은 언어를 언론매체는 물론 SNS상에 거침없이 구사해 왔다. 표면상 훌륭한 사람으로 각인되고 사회적으로 명망가로 인정받았다. 그리고 고위공직에 올랐다. 그런데 본인과 가족들의 실상이 공개되고 자녀들의 입시비리가 낱낱이 드러났다.

그가 구사한 화려한 언어로 주장하던 비판과 사회정의가 일반인들이 추구하는 삶의 가치와는 배치(背馳)되는 행동임이 드러났다. 그의 언어와 삶, 언행이 불일치하는 허구임이 드러났다. 언어의 힘과 개인의 삶이 일치하는 상수관계가 아니라는 사실이 증명됐다. 그가 구사했던 언어는 그를 욱죄는 도구가 됐다.

공허한 말과 변론만으로는 누구의 삶도 바꿀 수 없다. 교과서만 읽어서는 결코 새로운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지 못한다. 예컨대 장인의 곁에는 일거수일투족을 보고 배우려는 견습생들이 모여 있다. 우리와 우리 자녀들에게도 이처럼 다른 이의 삶을 관찰하고 배우는 능력이 필요하다.

삶의 현장으로 들어가 봐야 한다. 열린 마음과 매의 눈으로 세심하고 꼼꼼히 관찰해야 한다. 인간의 삶 속 거기에 진정한 삶의 진실이 놓여있다. 때론 더 먼 곳도 바라보자. 자연과 우주 속에는 배울 것이 널려있다. 거기에는 수많은 생물과 무생물 간의 교환과 순환이 쉬지 않고 일어난다.

그 속에 세상을 움직이고 생명을 창조하는 창조주의 지혜, 우리를 향해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일하시는 그분의 '실천적 지혜'가 숨어있다. 배우고 누리고 나누자.

성경의 잠언 6장 6절에 "개미에게 가서 그가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라고 했다.

우리는 언어의 힘을 믿고 과신하는 습성이 몸에 배어있다. 위험한 생각일 수 있다. 삶에서 배워야한다. 직접 보고 행동하며 깨달아야한다. 언어를 통한 배움도 중요하지만 인간의 실제 생활 속에 삶의 지혜가 숨겨있다는 가르침이다.

우리는 이 선거철에 언어홍수를 겪고 있다. 뿐만 아니라 언어의 위력을 실감하고 있다. 그러나 후유증은 만만치 않을 것이다. 법위반이 엄청나게 많을 것으로 짐작된다. 언어의 힘에 못지않은 반작용에 대해 깊이 성찰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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