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무영 시인
김무영 시인

1919년 3월1일은 일제강점기 상황에서 자유와 독립을 부르짖은 날이다. 이 운동은 애국지사들로 시작해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물론 외국에까지 알리고 전파돼 대한민국의 자존심을 고취시킨 운동이다.

이 함성이 거제까지 울려 거제독립만세 운동으로 전개하기에 이르렀다. 1900년대 초 거제에는 이운면을 중심으로 각 지역에 이미 청년 모임이 결성됐고 이 청년들이 독립운동의 중심지였다. 거제에서 독립운동이 발발한 아주·옥포지역 등 이운면은 거제지역 교통요충지였기에 자연스레 거제 독립만세운동의 발상지가 됐다.

1924년 10월6일자 조선일보 3면에 실린 거제지역 청년단체는 이운청년회(아주·옥포)·연초청년회·하청청년회·장목청년회·일운청년회·동부청년회·둔덕청년회·제동청년회·사등청년회·수양회·능포청년회·장승포청년회·소동청년회·지세포1구·지세포2구·와현청년회·예구청년회·구조라청년회·한내공익회·죽도기공·사곡공익회·둔덕우리회·사곡청년회·유계청년회 등이다.아주·옥포 등 이운지역에서 윤택근(이명 윤일)을 중심으로 청년운동이 시작, 점차 거제 전역으로 확대됐다.

3.1운동의 물결로 시작된 거제의 만세운동은 1919년 4월3일 이운면 아주장터에서 발발했다. 다른 지방과 마찬가지로 독립만세 시위를 모의한 윤택근은 이주근·이인수·이공수·이선이 등과 거사를 결의했다.

4월3일은 아주장날이었는데, 이운면과 연초면 주민 2500여명과 함께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이날 시위로 윤택근·이인수·이주근 등이 체포돼 옥고를 치렀다.

또 주종찬(1893~1933)은 이날 옥포교회 교인들과 함께 아주장터 만세운동에 참가했으며. 4월6일 이운면 옥포리 망덕봉 앞에서 200여명의 군중과 함께 옥포를 출발해 10리 거리의 아주장터로 태극기를 들고 만세행진을 했고, 이후 거제 전역으로 펼쳐졌다.

주종찬의 형인 주영찬은 이운면에 거주하면서 천석군을 이뤘으나 독립운동을 하는 동생과 그 일행들에게 전 재산을 털어 비밀리에 뒷바라지해 훗날 맏이는 경북 강구 어부로, 둘째는 남의 집 일을 해주며 생계를 잇기도 했다.

둘째 주맹용은 자수성가 했으나 그 재산마저 문중에 기부한다는 뜻을 이어 그의 자녀인 주말순과 주일봉은 수십억에 달하는 재산을 문중에 기부했다. 특히 주일봉은 월남전에 참가한 수당을 전부 기탁해 일봉장학회를 만들었고, 외손자 고영화는 거제지역 고전문학을 연구한 공로로 시민상을 받기도 했다.

3.1운동이나 거제의 4.3운동은 민족자존을 고취시키고 일제의 탄압을 세계만방에 알리는 계기가 됐다는 의미도 있지만, 무력으로 인권을 짓밟고 민족을 말살하려는 무력에 대항해 기꺼이 목숨을 내던진 우리 민족 불굴의 정신을 알렸다는데 의의도 있다.

3.1운동·거제만세운동은 일제강점기 당시 인권 말살 상황에서 독립에 대한 의지를 불사른 우리 민족의 정신을 고취시켜 다시는 이런 상황이 발발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며, 선열들의 정신을 계승해 부강한 나라를 만들자는 것이다.

곳곳에 소녀상이 세워지고 그 뜻을 기리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평화의 소녀상'이라고도 불리는 소녀상은 역사적 비극의 재발을 막자는 의미를 지닌 상징물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기리고 올바른 역사 인식을 확립하기 위해 2011년 12월 서울 종로 소재 주한 일본 대사관 앞에 처음 세워졌다.

이후 곳곳에 소녀상 건립되고 있으며, 해외 미국 미시간주·캐나다 토론토 등 여러 나라에서 소년상이 세워지고 있다.

거제에는 2014년 1월17일 거제문화예술회관 앞에 세워져 제막식 당시 고인이 된 김복동 할머니를 비롯해 3인의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가 참석했다. 특히 이 소녀상은 현해탄과 일본 본토를 정면으로 향하고 있어 어느 지역 소녀상보다 더 강렬한 인상을 준다.

3.1운동 정신과 맥을 같이하는 소녀상도 처참했던 일제강점기 당시 현장에서 세계만방에 그 참혹상을 알리고 자유와 민주주의를 부르짖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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