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력으로 3월3일은 음력으로 2월초하루다. 음력 2월은 기후생태학적으로 따뜻한 저기압과 차가운 고기압의 확장과 소멸이 불규칙적이어서 기압의 변화가 심하고 따라서 바람이 많은 달이다.

어업이 생업인 해안지방에서는 바람에 예민할 수밖에 없다. 사람들의 의지와는 아무런 상관없이 일어나는 자연현상 앞에 인간의 공포는 깊어졌고, 급기야는 바람을 신격화하는 경외심까지 생겨났다.

'동국세시기' 이월 조에 '영남지방에는 집집마다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풍속이 있는데 이를 영등신(靈登神)이라 한다.'고 했다. 영등신은 바람신(風神)이다. 다른 지방에서는 '영등할매'라고 하지만 거제 통영 고성 등지에서는 '할만네'라 부른다. 특이한 것은 철저한 개인신으로 집집마다 따로 모시게 된다.

영등할매는 2월 초하룻날 지상으로 내려왔다가, 스무날 다시 하늘로 올라간다. 그동안 할매를 달래고 어르면서 잘 대접해야 2월 영등바람을 피할 수 있다고 믿었다. 따라서 할만네는 자연을 극복하려는 인간의 의지를 문학적 상상력으로 만들어 낸 역설적 행위다.

영등할매는 폼 잡기를 좋아해서 혼자와도 될 것을 어떤 때는 딸을, 어떤 때는 며느리를 대동한다. 오는 날 바람이 불면 딸을 데리고 온 것이고, 비가 오면 며느리를 데리고 왔다고 여긴다. 딸과 올 때는 바람이 불어 딸의 분홍치마가 펄럭거려 아름답게 보이게 하고, 며느리와 올 때는 비를 가져와 며느리의 치마가 젖어 흉하게 보이게 한다. 고부갈등과 딸에 대한 모정이 엿보이는 할매의 갑질이다.

그런데 옛사람들은 반전이라는 문학적 기법으로 희화화했다. 오히려 할매가 오는 날이나 올라가는 날 비가 오면 시절이 좋고 바람이 불면 시절이 나쁘다고 점을 쳤다. 바람은 가뭄을 의미하고 비는 생산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할매의 심보와 반대다. 음력 2월에 부는 계절풍에 스토리텔링을 옷 입혀 하나의 문화로 정착시킨 조상들의 문학적 상상력이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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