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부경 거제향인

김부경 거제향인
김부경 거제향인

난중일기는 읽을 때마다 새롭다. 어릴 때는 내 주변의 이야기라 신기해서 읽었고, 직장에서는 조직관리에 도움이 될까싶어 읽었다. 이제는 거제사람의 시각으로 꼼꼼히 읽게 된다.

중학교 때 난중일기를 접했으니 수십년이 흘렀다. 그 사이 여러 번역본이 업그레이드 돼 나왔다. 처음 해군사관학교 조성도 교수의 번역본을 읽었고, 이후 제장명 교수 등의 저작을 읽었으며, 이번에는 노승석 교수의 교감완역판을 읽었다.

난중일기 속에 거제의 지명이 몇개 나오는지 헤아려 봤다. 무려 23개다. 임진왜란은 7년간의 전쟁 전체를 일컫지만, 일본이 정유년에 다시 침략하는 정유재란을 별도로 나누기도 한다. 정유재란 때는 교전이 한반도의 서남 해안으로 치중돼 거제도에 대한 언급이 극소수이나, 임진왜란 초기에는 사천에서 부산에 이르는 바다 전체가 전쟁터였다. 거제도는 전쟁터의 한복판에 있어서 여러번 언급된다.

난중일기 속 지명은 주로 바다에 면한 동네들이다. 영등포(구영)·율포(율천)·송진포·옥포·세포(성포)·장문포(장목)·지세포·조라포(구조라)·청등(청곡)·금이포(금포)·송미포 등 11개 동네이다.

율포는 현재 육지이지만, 임진왜란 때는 율천·대금 들판이 바다였다고 추정할 수 있다. 송미포가 어디인지는 학자들 사이에 의견이 나뉜다. 장목면 송진포·남부면 다대·또는 남부면 대포마을 중 하나로 보고 있다. 만약 송미포를 장목면이 아닌 남부면의 다대나 대포로 본다면, 이순신 함대가 부산 방향으로 진출할 때 거제도의 남단을 돌아서 갔다고 해석될 수 있으므로 송미포의 위치가 중요해진다.

섬은 모두 7개가 등장한다. 지금의 둔덕·사등·하청면 소속이다. 칠천도(七川·漆川·漆乃·溫泉)·적도(화도)·불을도(방화도)·가참도(가조도)·해북도(해간도)·흉도(고개도)·침도 등이다. 칠천도에 관한 4가지 표기 중 온천도가 눈에 띈다. 현재 칠천도 어온 마을이 '따뜻할 온'자를 쓰는데, 난중일기속 지명으로 미뤄 볼 때 온천과 연관된 칠천도의 역사는 아주 오래인 듯 하다.

또 바다와 관련해서는 견내량과 칠천량이 등장한다. 견내량은 견아량으로도 표기되어 있다. 어릴 적 어른들이 개나랑 개나랑 하던 말이 조선시대에도 쓰였던 모양이다. 앞서 언급한 송진포 역시 소진포로도 표기되어 있다. 이것 또한 소진개라고 하던 말의 오랜 흔적처럼 보인다.

직함은 4개가 등장한다. 거제 현령·율포 만호·옥포 만호·영등 만호 등이다. 거제 현령은 이순신을 자주 찾아간 인물로 나오며, 명량해전에서 앞장 서 공을 세웠다. 동네이름 외에 대금산·각호사(사등 신광사)·오양역이 등장한다. 대금산과 영등포에는 적의 해상 동태를 살피는 망군이 있어 수시로 한산도 통제영으로 와 보고하는 장면이 있다.

이밖에 발견한 것도 있다. 어릴 때 목선을 해변에 올려 놓고 배 밑바닥에 불을 지피는 걸 자주 봤다. 오랜 시간 물에 잠겨 있던 선체 부분에 연기를 쐬어 부식 방지와 경량화를 꾀하는 작업이다.

이를 당시 어른들은 연안한다고 표현했다. 난중일기에서는 연훈(煙燻)이라고 했다. 국어사전에 나오는 단어라는 걸 이제야 알았다. 그리고 여수의 방답이라는 지명에서 둔덕면 방답을 떠올렸다. 바다를 막은 후 밟고 다져 전답을 만든 곳이어서 이런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도 있다. 가령 대금산 망군은 어디로 내려와 배를 타고 한산도로 갔을까. 노는 누가 저었을까. 망군은 몇 명이었을까. 구미(龜尾)란 말도 그렇다. 갈바꾸미·밤구미 등의 용어가 바닷가에 많은데 여기 표기된 한자와 같이 거북의 꼬리처럼 생겨서 그렇게 부르는 것인지 궁금하다.

또한 수군이 궤멸한 칠천량해전의 전략 전술적 허점은 무엇이고 원균의 역할은 어디까지였는지, 해상에서 육지로 패주해 간 왜군들은 그 뒤 어떻게 되었는지, 투항한 왜군들은 조선 사람들과 어울려 잘 살았는지 등 궁금한 것이 많다.

이런 의문들이 여전히 남아 있어도 거제 사람의 눈으로 난중일기를 읽는 며칠 동안 나에겐 소소한 기쁨들이 이어졌다. 앞으로 역사학자들의 건투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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