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광 칼럼위원
김미광 칼럼위원

우연히 텔레비전을 보다가 ‘맘마미안’이라는 프로를 보게 되었다. 유명인사가 출연하여 자신의 어머니가 해준 음식과 요리사들이 만든 음식 중에서 엄마가 만든 자신만의 소울 푸드를 찾아내는 내용인데 그 방송을 보면서 나는 우리 엄마의 요리를 생각하게 되었다.

나에게도 ‘어머니’ 하면 떠오르는 음식이 몇 가지 있다. 객지를 떠돌면서 몇 번인가 엄마의 그 음식을 흉내 내어 만들어 보려고 했지만 나는 결코 똑같은 엄마의 손맛을 낼 수는 없었다. 세상 어디서도 맛 볼 수 없는 엄마의 음식. 다행히도 나는 엄마의 음식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있다.

내가 기억하는 엄마의 음식 중에서 가장 생각이 많이 나고 추억이 많은 음식은 당연 명절 음식이다. 어려운 살림살이에 보통의 나날들에서는 뭐 특별한 음식을 해먹을 여유도 없었거니와 우리는 형제, 자매들이 많아 한 상에 둘러 앉아 김치와 나물 반찬이라도 해먹으면 그나마 다행인 삶이었으므로 특별 요리 그런 사치는 부릴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엄마의 평범한 나물 반찬도 식당이나 다른 집에 가서 먹어보면 같은 나물로 만든 반찬인데도 엄마의 손에는 남모르는 비법이 숨어 있었던 것인지 엄마가 해준 그 맛, 입에 짝짝 붙는 그런 맛은 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엄마가 해주신 나물 반찬, 그 중에서도 정말 잊을 수 없는 마늘 고추장무침은 다른 곳에서는 맛 본적이 없다. 언젠가 한번 엄마에게 마늘 고추장무침을 어떻게 하는지 물어본 적이 있었는데 듣고 바로 집에 와서 해봐도 그 맛은 아니었다. 마늘을 삶는 시간과 양념의 비율이 잘 맞지 않아 엄마의 맛 근처에도 못 가는 그런 맛이 났다. 아무래도 이것은 엄마만이 낼 수 있는 맛일 거라는 생각이다. 

설이나 추석에 엄마가 해주시던 단술, 우리 가족들은 단물이라고 불렀던, 그 맛은 세상 어디에도 찾을 수 없는 맛이다. 명절이면 엄마는 꼭 단술을 만드셨다. 어렸을 때는 단술을 발효시키는 솥단지가 방 아랫목에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었고, 전기밥솥이 나온 뒤로는 식당용 대형 전기밥솥이 부엌에 위풍당당하게 나와 열일을 하고 있었는데 그 밥솥이 유일하게 일을 하는 시간은 명절 때 뿐이었다.

하룻밤을 꼬박 발효된 엿기름 섞인 밥은 다시 솥에 옮겨져 펄펄 끓여 발효를 멈추게 함과 동시에 수분을 날려 엿기름과 쌀의 단맛을 극대화시켰다. 그 사이에 엄마는 생강을 베주머니에 넣어 솥 안에 넣는가 그랬던 것 같다. 엄마는 단술에 설탕 같은 감미료를 넣지 않았으므로 아주 오래오래 단술을 끓여 수분을 증발시켰다.

그래서 그런지 엄마의 단술에는 설탕 이상의 뭐라 표현하기 어려운 오묘하면서도 순한 단맛과 생강의 은은한 맛이 났고 아무리 많이 먹어도 질리지가 않았다. 하나의 단술이 만들어지는 시간은 거의 24시간, 손 많이 가고 시간이 많이 드는 일명 슬로우 푸드다.

입이 까다롭기로 유명한 엄마의 손주들, 즉 요즘 아이들도 가장 생각나는 할머니 음식 하면 바로 ‘할머니 식혜’ 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요즘 젊은이들의 입맛에도 맞는 엄마의 단술이다.

엄마는 ‘할머니 식혜가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는 손주들의 칭찬에 힘입어 매 명절 때마다 단술을 만드신다. 특히 설 명절에 만든 단술은 바깥에 두어서 살얼음이 살살 언 상태로 만드는데 이건 정말이지 뭐 이런 맛이 나나 할 정도로 잘 발효된 엿기름 자체가 꿀맛, 조청 맛이다.

어떤 때는 늦게 집에 가서 그 맛난 단술을 조카들에게 다 뺏기고 나는 한 방울도 못 먹고 오는 때도 있지만 세상 어디에서도 맛 볼 수 없는 우리 엄마의 음식 단술, 내 마음을 따뜻하게 하고 동생들과 내 어린 시절을 소환시키는 그 단술의 그 아련한 단맛을 나는 엄마의 손맛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설에도 엄마는 그 엄마만의 단술을 만드신다고 하신다. 만약 내가 ‘맘마미안’ 이라는 티비 프로그램에 나와서 엄마가 만든 단술을 맞출 수 있을지 누군가 묻는다면 내 답은 ‘당근이지’ 다. 엄마의 단술 맛은 세상 어디에서도 맛 본적이 없기 때문에 나는 단번에 그 맛을 알아낼 수 있다고 자신한다. 아, 설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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