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성애 수필가/시인
문성애 수필가/시인

날씨가 좋다. 유월의 초록빛이 춤을 추는 날에 친구 따라 근처 사찰에 갔다. 조용함 속으로 바람 한 결에 울리는 풍경 소리가 왠지 발걸음을 조심스럽게 한다.

산사를 이리저리 둘러보다 가만히 앉아 있는 개를 보았다. 삽살개라는데 외부인에게 짖지 않아 조금 친근감이 간다. 온몸은 짙은 회색털이고 한쪽 눈 위로 털이 수북이 덮여있어 한쪽 눈만 보인다. 그나마 조금 보이는 한쪽 눈은 나를 빤히 바라본다. 마주보다가 한쪽 눈을 덮은 털을 올려 주려니 개가 허락을 하지 않는다.

두어번 손을 가져가니 외눈으로 나를 딱 쳐다본다. 순간 멈추었다. 불편한지 안한지는 말을 할 수 없으니 알 수 없다. 불편해 보이는 것으로 본 것은 나 자신이다. 개는 다시 아주 편한 자세로 엎드린다. 눈은 어디를 보는 것일까. 유월의 초록빛을 닮으려나.

얼마전 친구부부가 방문을 했다. 부부가 같이 할 수 있는 취미생활을 찾다가 그들은 등산을 선택했단다. 첫 산행은 근처 야산을 찾아 삼십분 정도부터 시작해 시간을 늘려갔다고 한다. 걷기를 싫어하는 아내를 위해 남편은 끝까지 기다려 주었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아내의 걸음 수에 맞추어 걷고 아내의 호흡에 맞추었다고 하니 놀랍기만 하다.

부부가 그렇게 합을 맞추기가 쉽지 않을 터인데 생각하니 더욱 그들이 대단해 보인다. 십년 정도가 되어가는 그들은 이젠 거의 전문가 수준의 등산가 부부라고 한다. 주말이나 연휴를 이용해 외국의 산들도 다녀온단다. 멋지다.

동갑내기인 우리 부부는 서로가 맞지 않는 부분을 가지고 많이 다투면서 정신없이 살아왔다. 어느 때부터인지 남편의 못난 점만 눈에 들어왔다. 밉다하니 모든 행동들이 거슬렸다. 두 눈은 남편의 허물만 쫓느라 정작 나의 허물을 보지 못했다.

아이들 입장은 생각지도 않고 아귀다툼을 했었다. 그러니 남편과 나의 교집합 공간은 점점 멀어지고, 색깔도 느낌도 다른 채로 상대방 탓만 하며 불혹이 되었다.

뒤늦게 부족한 나를 채운다며 남편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대학의 문을 두드렸다. 녹록치 않은 살림이었으니 당연했다. 늦깎이 공부를 하며 조금씩 무지에서 눈을 뜨게 되었다.

그리고 늦게나마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를 시작할 수 있었다. 이순을 바라보는 지금에야 상대방 마음을 이해할 가슴이 아주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다. 교집합이 조금씩 공간을 넓혀가고 있는 것을 느낀다. 이제야 철이 드는 것일까?

초 여름밤이 무르익어간다. 우리 부부는 같이 할 수 있는 취미생활이 없다. 물론 각자의 취미생활도 잘 모르고 살아왔다. 주위에서 많이 하는 골프는 돈이 많이 든다고 쳐다보지도 않았다. 남편은 회사의 취미클럽을 찾아보래도 '돈'이 많이 든다고 일축했다. 나 역시 동의하며 딴에는 야무지게 살았다.

그런데 이젠 뭐하지? 잠은 오지 않고 옆에서 코고는 소리만 요란하다. 젊고 다부진 남자는 온데간데없고 세월을 잔뜩 짊어진 채 옹그려 잠자는 남편이 측은해 보인다.

하고 싶은 것이 왜 없었으랴마는 가정이라는 지게를 단단히 메고 이순의 문 앞에 서 있다. 부부는 거울에 비쳐진 것처럼 서로의 모습이 닮아져 왔다. 밤은 깊어 가는데 잠은 옅어져 뒤척인다.

친구부부가 떠난 이후 살며시 남편에게 의견을 제시했다.

"여보, 우리도 이제는 둘이서 명소도 가고 맛있는 것도 먹고 해보는 것은 어때요? 나는 그러고 싶네요. 당신은 어때요?"

남편도 흔쾌히 그러자고 한다. 약속을 했다. 일을 조금 줄이고 주말은 즐겨보기로 했다. 경제적인 효율성을 보태어 '걷기'를 선택했다. 살고 있는 동네부터 걷고, 근처 산도 가보고, 가끔은 맛집 여행도 해보기로 했다. 천천히 연습해보기로 한다. 때로는 의견이 다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때는 손을 내밀고 바람과 햇살을 받으며 기다려주자.

두 눈을 지그시 감았다가 떠 본다. 한쪽 눈이 감춰진 삽살개는 적당히 보는 현명함일까? 조금 안보거나 못 보아도 별 문제가 없다. 오히려 띄어쓰기나 쉼표처럼 쉬어가도 좋겠다. 여태껏 참 바쁘게 살아온 건 아닐까?

산사의 삽살개가 아주 편한 자세로 엎드려 어디인가 바라보듯이 나도 편안한 마음으로 그의 눈길을 만나보자. 같은 곳을 바라보고 손을 잡고 길을 걸어가자. 우리의 첫 주말여행은 '구조라 성'이다. 벌써부터 기대되고 설렌다. 새 운동화가 예쁘게 앉아 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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