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피면 달 생각하고 달 밝으면 술 생각하고 /꽃 피자 달 밝자 술 얻으면 벗 생각하네 /언제면 꽃 아래 벗 데리고 완월장취 하려뇨' 조선 후기 대제학을 지낸 이정보 선생의 시다. '완월장취(玩月長醉)'는 달과 함께 술을 마시며 오래도록 취하고 싶다는 뜻이다. 술 마실 핑계거리인데도 낭만과 여유가 보이는 술의 상상력이 너무 아름답다.
술 마실 핑계로 치자면 연암 박지원 선생을 따를 자가 없다. 그 유명한 술낚시는 연암의 재치와 해학을 잘 보여준다. 연암은 가난해서 술을 마시려면 집에 손님이 왔을 때뿐이었다.

연암은 술 생각이 나면 집 근처를 서성이며 술손님이 될 사람을 찾는다. 그러다 지나가는 선비를 다짜고짜 집으로 데리고 들어간다. 아내가 막걸리 두 잔을 내어온다. 손님에게 술을 권하자 선비는 예의상 바로 마시지 않고 머뭇거리면 "술을 좋아하지 않으시는군요. 내가 대신 마셔드리지요" 하고 손님 술을 얼른 마시고 나서 자기 잔마저 쭉 들이키고는 "뭐 이상하게 생각하실 것 없소이다. 오늘은 그저 영감이 내 술낚시에 걸려든 셈이니까요"라며 웃었다.

소주는 소주라는 이름 하나뿐이지만 막걸리는 어느 것이 진짜 이름인지 헷갈린다. 이름부터 묘한 상상력을 불러 일으킨다. 막거른다고 '막걸리', 색깔이 탁하다고 '탁주', 농사 때 마신다고 '농주', 인목대비가 제주도에서 판 술이라고 '모주', 맑게 떠낸 건 '청주', 밥알이 딸려와 술에 동동 떠다니면 '동동주', 그뿐 아니라 '탁배기' '백주' '회주' '재주' 등도 있다. 막걸리의 상상력은 어디까지일까.

식량 부족으로 쌀 막걸리가 금지되자 밀가루로 술을 빚는 기지를 발휘했다. 지방이나 집집마다 특색 있는 가양주도 궁여지책이 만들어낸 상상력의 산물이다. 쌀을 줄이는 대신 솔잎이나 약재·과일 등을 섞어 새로운 술을 만들어 낸 것이다. 술은 마시고 싶고 쌀은 부족하자 이를 극복하기 위한 상상력과 실험정신이 빚어낸 창작품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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