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곤 거제제일교회 목사
김형곤 거제제일교회 목사

현재 우리 사회에서 자주 회자되는 말이 있다. ‘내로남불’이다. 그런데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뜻은 대략 짐작하면서 ‘사자성어’로 알고 있다.

‘내로남불’의 뜻은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긴 문장을 축약해서 줄임말로 말의 앞말만 따서 만들어진 신조어라 할 수 있다. 굳이 뜻풀이라고 말하기는 어색하지만 말 그대로 ‘내가 하면 사랑이지만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말로 남을 비난하면서도 자신에게는 관대한 태도를 취하는 사람을 뜻하는 ‘이중잣대’에 관한 표현이다.

이를 테면 ‘내가 하면 예술이고 남이 하면 외설’‘내가 하면 오락이고 남이 하면 도박’이라는 것이다. 똑같은 또는 유사한 상황에서 각자의 관점만을 주장한다. 한마디로 말해서‘나는 옳고 남은 그르다는 뜻’이다. 심리적 측면으로도 내가 하면 잘한 것이고 남이 하면 못마땅한 인간 본연의 심성이라든지 마음의 문제도 여기에 포함돼 있기에 지극히 이기적이고도 교만이라는 가면을 쓰고 있는 것이 문제이다.

내로남불의 원인은 무엇일까? 바로 우리가 약하기 때문이다. 더 자세히 내면을 들여다 보면 약한 것이 잘못이 아니라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이다. 이른바 자신이 강한 존재라는 것을 어떻게든 증명하고 또한 절대로 약한 존재로 보이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다 보니 어느듯 우리 자신에게 겸손이라는 귀한 결정체가 사라지고 욕망과 폭력적인 방법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자신이나 집단이 약하다는 사실이 드러나면 존재 자체가 무너진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약함을 부정하고 무수한 언어적 수사를 동원하여 모든 것을 복잡하게 만든다. 이러한 것이 약하다는 반증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사람들은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저 사람은 나와 틀린 것이 아니라 다만 다를 뿐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인 순간부터 관계에서 더욱 자유로워진다. 한 하늘 아래 함께 숨 쉬고 있는 걸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들이 내로남불을 목놓아 외치게 된다.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사람, 남의 아픔에 무관심한 사람, 감성하고는 거리가 먼 언어적 폭력, 행동은 없고 말만 앞서는 사람, 인간미가 없는 냉정한 실리주의자, 자기 생각만이 옳다고 우기는 사람, 모두가 또 다른 내 모습이고 숨겨진 열등감의 표현인 걸 알아야 한다.

이런 말이 있다. ‘어느 때인가 내 인생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었을 때, 바람에 떨어지는 나뭇잎 길가에 피어 있는 작은 꽃, 작은 돌 하나까지도 내게는 다 삶의 의미가 되었다’. 우리 인생의 가장 큰 의미는 개인이든 집단이든 이 모두는 삶의 이유이다. 소중한 이웃이 있기에 함께 울고 웃고, 괴로워할 수 있기에 내 인생은 진정한 의미가 있으며 내 삶을 풍요롭게 해 주는 것이다.

인간은 다 약하다. 이 약함을 유한성이라고도 말한다. 성서에서는 종종 인생을 토기 그릇, 질그릇에 비유한다. 질그릇의 특색은 모양이 투박하고 작은 충격에도 잘 부서진다. 질그릇은 흙으로 만든 것이어서 별로 가치가 없다. 질그릇은 진흙을 빚어 유약을 바르지 않고 구운 용기(容器)이다. 윤기가 없고 투박하고 무른 것이 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연약하고 무가치한 존재나 한계가 분명한 인간의 육신임을 말한다. 인간은 강한 것 같으나 사실 견고하지도 못한 참으로 연약한 질그릇 같은 존재이다.

그러기에 우리가 다 마음의 문을 열고 마음의 숨결을 들어보면 절망의 몸부림이 있고 가슴마다 탄식이 서려 있다. 인간은 상한 갈대, 꺼져 가는 심지와 같은 존재요, 들의 꽃과 같은 존재라고 표현한다. 끊임없이 질병과 환난, 시험과 가난, 실패와 공포로부터 쉽게 낙망하고 좌절하는 존재이다.

그래서 철학자 파스칼은 "인간은 갈대다. 한 방울의 물, 한 점의 바람에도 죽을 수 있다"라고 했다. 이처럼 인생은 깨지기 쉽고, 투박하여 질그릇과 인생은 많이 닮았다.

하지만 이 질그릇에서 느낄 수 있는 진리가 있다. 많은 사람들의 살림살이 중에 소소하기도 하거니와 친근한 그릇이다. 물론 질그릇은 깨지기 쉽기 때문에 항상 조심해야 한다. 하지만 질그릇이 가진 본질적인 가치는 그 안에 무엇을 가지고 있느냐의 문제이다. 간장이 담겨지면 간장 그릇이며, 보석이 담겨있으면 보석 그릇이다. 그 안에 무엇을 담느냐에 따라서 그릇의 가치는 달라진다.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고후 4:7上). 그러므로 질그릇 안에 담겨져 있는 내용물로서 평가하듯 우리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도 매우 중요하다.

제임스 패크의 저서 ‘약함이 길이다’에서 “삶이 있는 곳에 희망이 있다”이 말의 어순을 바꾼면 “희망이 있는 곳에 삶이 있다”라고 하는 긍정적인 표현을 했다. 좋은 가을이지만 현실은 어수선한 정치의 계절, 그들의 그릇에는 내로남불이 성찬처럼 담겨있을지 몰라도 백성들은 이 어려운 시기에 희망이라는 보배를 그릇에 소담히 담아 다시 일어서는 삶으로 나아가기를 응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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