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귀식 밀양교회 목사
민귀식 밀양교회 목사

10월을 맞이하면서 완연한 가을 분위기를 느끼게 됩니다. 계속 우리 곁에 머물러 있으면서 삶을 지치게 할 것만 같았던 무더운 여름 기운이 저만치 멀어져 있으며 아침저녁으로는 수은주가 뚝뚝 떨어지면서 우리의 옷깃을 여미게 하는 계절이 됐습니다. 낮 시간을 보내면서 만나게 되는 청명한 가을하늘과 저녁노을의 붉은 기운은 우리 인생의 스승이 되는 계절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잠시도 쉬지 않으시고 계속해서 일해 오신 흔적이 넓은 들녘에 펼쳐져 있는 황금 들판을 통해서 입증이 되고 있으며, 푸르름을 자랑하던 각종 나무들이 연분홍빛 아름다운 옷으로 새롭게 단장하는 모습과 가지가지에 달려있는 탐스러운 열매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가을을 보내면서 우리가 가장 소중하게 여겨야 할 것이 무엇일까요? 청년 시절에는 전혀 느낄 수 없었던 깨달음,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니 그것은 우리에게 매일 그저 주어지는 시간입니다.

내게 주어지는 하루하루, 한 시간 한 시간을 내가 존재하고 있는 지금 여기서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인생은 마지막 하나님 앞에서 결산을 하는 순간 웃으며 행복의 나라로 입성할 수도 있고 그렇지 못하고 슬피 울며 이를 갈 수도 없잖아 있습니다.

마태복음 25장에서 예수님은 달란트 비유의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주어진 재능의 결산과 충성의 결산, 헌신의 결산도 말씀하고 있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의 결산도 말씀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만 합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세월을 아끼라”(엡5:16, 골4:5)고. ‘세월을 아끼라’는 말씀은 ‘시간을 아끼라’는 말씀과 함께 ‘젊음을 아끼라’는 말씀이요, ‘청춘을 아끼라’는 말씀이요, 주어진 세월 ‘허송세월을 하지 말라’는 말씀이요, ‘열심히 신실하게 삶을 살라’는 말씀입니다. 

19세기 영국을 대표하는 역사가이며 비평가인 토마스 칼라일(Thomas Carlyle·1795~1881)은 영국 스코틀랜드의 한 청교도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부르거(Burgher)교회의 신실한 성도였으며, 칼빈주의 신앙의 영향을 받은 칼라일은 에든버러 대학에서 수학과 신학을 공부하였으며, 그 이후 독일 문학을 연구하기 시작해 괴테와 실러 등의 작품을 영국에 소개한 바 있습니다. 

1834년 런던으로 이사를 한 칼라일은 역사에 대하여 관심을 갖기 시작했으며 전체 세 권으로 이루어진 ‘프랑스 혁명사’를 저술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존 스튜어트 밀에게 초고를 빌려주었다가 하녀가 그 원고를 불쏘시개로 다 태워버리는 바람에 다시 저술하였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그는 '프랑스 혁명사'란 대작을 쓰기 위해 넉넉하지 않은 형편 중에도 바깥출입을 거의 하지 않고 두문불출하며 오로지 집필에만 매달렸습니다. 그렇게 완성된 수천 장의 원고를 그의 지인이자 철학자인 존 스튜어드 밀(John Stuart Mill·1806-1873)에게 검수해 달라고 맡겼던 것입니다. 

그런데 밀이 서재에서 원고를 검토하다가 지친 나머지 읽고 있었던 원고를 어질러 놓은 채로 침실에 들어가 잠이 들었습니다. 밀이 잠든 사이 서재에 청소를 하러 들어갔던 그의 하녀는 어지럽게 널려 있는 원고가 버려야만 하는 쓰레기들인 줄 알고 난로에 넣어 모두 태워버린 것입니다.

이로 인해서 오랜 시간 각고의 노력 끝에 집필된 그의 원고가 그만 형체도 알아볼 수 없는 잿더미가 됐다는 사실에 집필자 토머스 칼라일은 큰 충격을 받게 됐고, 그 사건으로 인해 한동안 실의에 빠져 절망의 늪을 헤매게 됐다고 합니다.

실의에 빠져서 허송세월을 보내다가 다시 마음을 다잡게 된 계기가 있었는데 그 계기는 벽돌 한 장 한 장을 쌓아 올라가면서 집을 완성해 가는 벽돌공의 모습을 보고 큰 깨달음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나도 저 벽돌공처럼 다시 시작해야 되겠다. 벽돌공이 벽돌을 한 장 한 장 쌓아서 멋진 집을 완성해 가는 것처럼 나도 매일 프랑스 혁명사를 한 페이지 한 페이지씩 써내려가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토마스 칼라일은 정신을 차려 펜을 잡게 되었고 날마다 한 페이지 한 페이지씩 그가 집필하고자 했던 프랑스 혁명사를 써내려가기 시작했고, 마침내 1837년 ‘프랑스 혁명사’가 세상에 얼굴을 내밀게 됐습니다. 이 프랑스 혁명사는 19세기 유럽 사상계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으며 새로운 개혁의 지표가 됐습니다. 

20세기 역사가 브린턴(Crane Brinton)은 빅토리아 시대에 가장 영향력이 컸었던 인물로 존 스튜어트 밀과 칼라일을 꼽습니다. 토마스 칼라일을 배제하고서는 19세기 영국 문학사도 영국 사회사도 설명할 수 없다고 강조한 바 있습니다. 

우리의 손 안에 바닷가 모래를 한 가득 움켜잡지만 움켜잡은 모래는 금세 손가락 사이사이로 빠져나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손 안에 움켜진 작은 모래알처럼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 역시 우리 안에 그대로 있는 것이 아니라 자꾸만 이리저리 빠져나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영원히 소유할 수도 없고, 머물러 있게 할 수도 없으며 지금도 끊임없이 흘러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침에 눈을 떠서 다시 저녁에 감게 되기까지 주어진 하루의 시간을 근실하게 살아야만 합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가치 있는 시간은 현재라는 시간입니다. 지금 나에게 주어진 오늘 하루 24시간을 사랑하며 알차게 보람되게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돼야 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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