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철 스님 / 장흥사 주지

중생의 세계는 부처의 세계와 달리 오해와 다툼이 있는 세계인데, 우리 주변 일상사를 둘러보면 대단히 좋은 마음인데도 불구하고 받아들이는 입장에서 오해하여 갈등을 일으키는 경우를 흔히 보게 됩니다.

 우리 중생의 삶은 오욕락을 쫓다보니 오탁악세의 고해에 빠져들게 되는데 이것을 해결해 주고자 부처님께서 오신 것입니다.

부처님께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 삼계개고 아당안지(天上天下 唯我獨尊 三界皆苦 我當安之·이 세상에 나 홀로 존귀하다. 온 누리가 다 괴로움에 빠져 있으니 내가 이를 편안케 하리라)’.

그렇다고 해서 부처님께서 모든 중생의 고통을 좌지우지 하시는 걸로 오해하면 안됩니다.

부처님께서는 법화경을 통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일체중생 실유불성(一切衆生 悉有佛牲· 모든 중생은 모두 불성을 지니고 있다)

행복해지려면 좋은 사람, 좋은 일을 볼 줄 아는 눈을 떠야합니다. 그러하면 세상은 확 달라져 보일 겁니다.

우리 가정은 물론 주변에 이미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 보현보살이 함께 살아가고 있으며, 이 세상 그대로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정토인데 우리가 모르고 살아갈 뿐입니다. 관세음보살을 만나고 싶다면 내 마음이 관세음보살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관세음보살을 볼 수도 없고 확인할 수도 없습니다. 좋은 사람을 만나려거든 내가 먼저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착한 며느리를 보려면 내가 먼저 좋은 시어머니가 되어야 하며, 남편이 사랑스럽거든 내가 먼저 시어머니께 잘 해야 합니다.

자식이 올바르기를 바라거든 내가 먼저 부모님께 지극정성으로 효도를 다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한 마음씨, 가족끼리 서로 먼저 위해주고 걱정해주는 마음씨가 곧 관세음보살의 마음이며 대세지보살의 마음입니다.

행복은 결코 돈으로 얻을 수 없습니다. 물질적으로 풍요하면 편리하기야 하겠지만 물질을 약 쓰듯 잘 써야지, 잘못 쓰면 오히려 독이 되는 법입니다. 행복은 외부조건의 충족으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내가 어떤 생각으로 세상을 보느냐에 달렸습니다.

우리 마음이 부처님 말씀대로 되지 않으면 모순과 갈등의 고통에서 절대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마음이라는 것이 내 마음조차 내 마음대로 안 되는 것이므로 마음을 닦아가는 수행이 필요합니다.

자꾸 미루기만 하면서 아까운 세월을 다 흘려 보내면 안 됩니다.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느낌을 받은 그 순간이 바로 시작의 단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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