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에 가면 자리에 앉기도 전에 종업원이 "몇 분이세요?" 하고 묻는다. 대개 네 사람이 앉을 수 있는 식탁이라 혼자 식당에 들어가 자리차지하기에는 부담스럽다. 지금이야 거의 들을 수 없는 인사말이 되었지만 누굴 만나면 대뜸 "식사하셨어요?" "진지 잡수셨습니까?" "밥 먹었나"하는 말이 일상의 인사로 여길 만큼 흔했다.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 아이를 부르는 엄마의 목소리는 어김없이 "아무개야 밥 먹어라"하는 고함소리다. '먹는 것'만큼 중요한 게 없다. 그래서 '먹다'라는 동사는 매우 광범위하게 쓰이고 있다. 물도 마시는 게 아니라 먹는다하고, 나이도 먹고, 식겁도 먹고, 심지어 챔피언도 먹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있어 '먹다'는 참으로 두루 쓰이는 의미로운 낱말이다.

부모가 아이에게 벌을 주는 방법도 동서양의 차이가 있다. 서양부모들은 방에 가두어 놓고 밥을 굶긴다. 그래 놓고 다른 식구들은 보란 듯이 밥상에서 웃으며 밥을 먹는다. 잘못했다고 빌지 않으면 끝내 밥을 주지 않는다. 우리나라 부모들은 집에서 쫓아내 밥을 굶긴다. 그런데 때가 지나면 아이가 용서를 빌든 말든 엄마는 몰래 밥을 챙겨준다. 아버지는 알면서도 모른 체한다. 또는 아이가 몰래 밥을 먹어도 그냥 못 본 체 내버려 둔다. 그러면서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고 말한다.

자식이 부모를 상대로 자기 의견을 관철시킬 수 있는 무기 또한 단식투쟁이다. 밥을 먹지 않고 개긴다. 어릴 때 장난감 사 달라고 조르다 안사주면 밥 안 먹는다고 투정을 부렸고, 가기 싫은 시집가란다고 드러누워 밥을 굶는다. 그래서 행복한 가정의 표상은 가족끼리 오순도순 식탁에 모여 앉아 밥 먹는 장면이다. 과거와는 달리 이제 가족들이 모인 밥상은 보기 힘들어졌다. '1인 가족'이라는 새로운 용어가 등장했다. 대통령후보 중 한 분이 '집사부 일체'에 출연하여 대통령이 되면 혼밥하지 않겠다고 했다. 혼밥이 불통의 상징이라면 같이 먹는 밥은 소통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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