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이 일어났다. 백성들은 왜적들을 피해 산속으로 피난을 떠났다. 살림세간을 이고지고 깊은 산속으로 가다가보니 더 이상 산이 막혀 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정착하게 된 곳이 '산막이마을'이다.

세상과는 절연된 오지 중의 오지였다. 차는커녕 소달구지도 다닐 수 없는 첩첩산중 외딴 곳이었다. 그런데 이 마을에 희망의 소식이 전해졌다. 일제강점기 때 일제는 충청도 내륙지방의 물자를 수송하기 위한 철도를 놓게 된다. 지금의 충북선이다. 이 선로가 산막이마을을 통과하도록 설계가 되었다. 마을 어른들은 철도가 들어오면 외지사람들이 들끓고 여자들이 바람나기 알맞다며 결사반대하게 된다. 이 반대에 부딪쳐 철도는 음성쪽으로 선로를 옮기게 된다.

그 후로 동네 어른들은 젊은이들로부터 마을이 발전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며 두고두고 원망을 들었다. 그러다가 1957년 우리나라 최초의 댐인 괴산댐이 건설되면서 마을의 일부는 수몰되고 겨우 몇 집만 명맥을 유지했다. 시내로 나가던 길은 물에 잠기고 산중턱으로 새로운 길이 생겼다.

사람의 일이 새옹지마(塞翁之馬)라고 이 오지가 둘레길 열풍이 불면서 괴산군을 대표하는 트레이드마크로 변했다. 2011년, 칠성면 외사리 사오랑마을에서 산골마을인 산막이마을까지 10리길을 '산막이옛길'로 조성하자, 주말이면 1일 만 명이 찾는 대단한 명소로 바뀌었다. 대한민국 국민이면 한번쯤은 왔다갔다고 할 만큼 유명하다. 지금까지 누적관광객이 천만 명에 가깝다. 괴산의 경제를 살리는 효자상품이 되었다.

오지를 오지로 남겨둔 덕택이다. 지금의 관광 트렌드는 길 번듯하고 숙소 많고 비까번쩍한 시설이 좋다고 찾는 게 아니다. 오히려 교통이 불편하고 문명과는 거리가 먼 원시세계라 할지라도 마음이 편안한 곳을 좋아한다.

거제에 하나 남은 원시의 섬, 지심도를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사람의 손이 타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대로 한 30년 쯤 묵혀 우리 후손들에게 넘겨주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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