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귀식 밀양교회 목사
민귀식 밀양교회 목사

고사성어 가운데 조삼모사(朝三暮四)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을 직역하면 ‘아침에는 세 개를 던져 주고 저녁에는 네 개를 던져 준다’는 뜻으로 송나라 때 원숭이를 기르던 저공(狙公)과 원숭이들 간의 우화에서 나온 이야기입니다.

저공은 원숭이를 기르던 사람으로 처음에는 자신이 기르던 원숭이들을 자신의 가족과 같이 생각한 사람이었습니다. 원숭이 먹이가 모자라면 식구들의 양식을 줄여서 원숭이에게 먹일 정도로 친밀한 관계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생활형편이 어려워지게 되자 원숭이들이 원하는 만큼 먹이를 줄 수 없게 됐고 꾀를 내 원숭이들에게 물었다고 합니다.

“앞으로는 너희에게 주고 있는 이 도토리를 아침에는 세 개를 주고, 저녁에는 네 개를 주려고 하는데 너희들의 생각은 어떠하냐?” 원숭이들은 아침에 세 개를 주는 것은 너무 적다고 화를 내게 됩니다. 그러자 저공은 다시 묻게 됩니다. “그렇다면 아침에는 네 개를 주고, 저녁에는 세 개를 주려고 하는데 너희들의 생각은 어떠하냐?” 원숭이들은 모두 기뻐하면서 저공의 제안을 수용했다고 합니다.

이 우화는 ‘열자’와 ‘장자’ 등의 고전에 실려 있는데 우리에게 시사해 주는 바가 각각 다름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장자’편은 저공을 지능이 낮고 어리석은 원숭이들의 생각까지도 유연하게 받아들이는 지혜로운 인물로 존경받을 수 있는 위인으로 비유했지만 ‘열자’편에서는 어리석고 우둔한 자들을 속이는 것에 비유하면서 간사한 꾀로 사람들을 속이는 아주 나쁜 행동을 꾸짖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물론 두 고전의 해석은 제 각각의 상황과 형편이 다른 측면에서 그 의미를 다르게 보고 있지만 상호간의 믿음과 신뢰라는 측면에서 우리가 살펴보면 저공의 행동은 결코 바람직하다고 말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저공은 어리석은 원숭이들의 믿음과 신뢰를 완전히 저버렸기 때문입니다.

‘믿음’을 한자로 ‘신앙(信仰)’이라 표현할 수 있습니다. 이 ‘신앙’이라는 말은 ‘믿을 신(信)’자와 ‘우러를 앙(仰)’자로 돼 있으며, 믿을 신(信)자는 ‘사람인(人)’변에 ‘말씀 언(言)’자로 조합돼 있습니다. 즉 ‘믿음’은 그 사람이 하는 말을 그 사람 자신이 실천할 때 생기는 삶의 열매입니다. 자신이 입밖으로 내뱉은 말에 대해 책임있는 행동을 하지 않을 경우 그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믿음과 신뢰를 얻기란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의 말은 불신을 얻을 수밖에 없습니다.

공자가 쓴 ‘논어’의 ‘안연’에서는 믿음이야말로 모든 과업의 근본이 됨을 증언해 주고 있습니다. 어느 날 공자의 제자 가운데 직위가 높은 자공이 찾아와 이렇게 물었습니다.

“선생님 정치란 무엇입니까?” 공자가 이렇게 대답을 합니다. “옳은 정치란 첫째, 백성들로 하여금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식량을 생산하도록 하는 것이며, 둘째 국가가 외부 세력의 침략을 받게됐을 때 국방을 튼튼하게 할 수 있는 군대를 보유하는 것이며, 셋째 백성들로 하여금 정치 지도자들이 믿음을 갖도록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자공이 다시 질문합니다. “그 세 가지 중에 하나를 버려야 한다면 무엇을 버려야 합니까?” 또 공자는 답하기를 “국방을 튼튼히 할 수 있는 군대를 버려야 한다”고 대답을 했고, “또 한 가지를 버린다면 무엇을 버려야 합니까?”하는 자공의 질문에 “백성들로 하여금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식량을 버려야 한다”고 대답을 하면서 “자고로 사람들은 모두 죽게 마련이지만 백성들의 믿음이 없으면 그 나라는 존립하지 못한다(民無信不立)”고 강조한 바 있습니다.

즉 공자는 “믿음을 모든 정치의 근본이자 나라를 통치해 가는데 있어서 핵심적인 철학”으로 인식했던 사상가였습니다.

이같은 사실은 한 나라를 통치하는 정치인들뿐만이 아니라 개개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 있어서 믿음과 신뢰가 무너지면 두 사람의 우정과 아름다운 관계는 지속될 수 없습니다. 믿음을 상실한 부부의 가정은 금이 가고 금세 깨어지고, 신뢰를 잃어버린 직원은 직장으로부터 퇴출 될 수밖에 없고, 믿음을 저버린 사람은 이웃과 공동체로부터 외면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로서 믿음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크리스천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을 구원자로 메시야로 믿는 믿음의 사람들로서 모든 사람에게 신실한 믿음과 삶의 본을 보여야 합니다. 가정과 교회 및 공동체 속에서 참된 믿음을 보이며 확실한 신뢰를 얻어야 합니다.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말해도 그대로 믿어주고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는 믿음과 신뢰를 이미 얻는 사람일 것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신실함을 저버린 불신의 사회가 돼가고 있습니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정직성과 진실성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정치계는 말할 것도 없고 경제·교육 등 각종 분야에 거짓과 속임수가 판을 치고 있으며 불법이 난무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이런 현실 속에서 먼저 믿음과 신뢰를 얻는 참된 목회자와 교회가 돼야 하며 교인들이 돼야 합니다. 정치하는 정치 지도들과 정부가 돼야 할 것이며 국가의 백년대계를 책임지는 교육계가 돼야 할 것입니다. 그때 대한민국이 세계 속에 진정한 선진국으로 자랑스러운 나라가 될 것입니다. 한반도 구석구석에 참된 믿음과 신뢰의 꽃밭이 아름답게 조성되기를 소망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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