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성 본지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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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자년(庚子年) 묵은 달력을 떼어내고 신축년(辛丑年) 새 달력을 걸은 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입춘(立春)을 지나 설맞이에 모두가 분주하고 설렌다. 설 즈음에는 코로나19 확산도 진정돼 거리두기 조치가 조금은 나아지기를 기원했건만 기대의 목마름은 아직인가 보다.

정부는 설 연휴가 낀 14일까지 수도권 2.5단계와 비수도권 2단계를 유지한다고 한다. 5인 이상 사적 모임 금지, 오후 9시 이후 식당과 카페 등 매장 영업 제한 조치도 이어질 전망이다. 이러다 보니 설 차례를 지내고 세배를 드리고 덕담을 나누며 한해의 길함을 얘기하던 우리의 전통적 모습은 시대의 형편에 따라 조금은 내려놓아야 할 것 같다.

주소지가 다른 가족이 5인 이상 모였다가 적발되면 과태료 10만원 뿐만 아니라 확진자라도 발생하면 변상 조치까지 책임은 막중해진다.

그러나 제도적 제재의 무서움보다 제일 중요한 것은 결국 나와 내 가족, 내 이웃, 나아가 우리 사회의 건강일 것이다. 전통을 이어갈 건강한 사회로 다시 돌리는 일, 거리두기. 아쉽지만 전통이라는 굴레도 문화라는 명칭도 잠시 뒤로 두고 지켜야 하지 않을까.

'설 연휴 찾아뵙지 않는 게 효입니다', '아들아, 설 명절 안와도 된다.' '며느라 선물은 택배로 부쳐라' 등의 유행어가 있는가 하면 세뱃돈 주고받는 방법도 새로 생겨나기도 했다. '사랑해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새뱃돈 5만원 충전 요청합니다. 아래 계좌로 입금 또는 링크 클릭해 결재를 해주세요' 등 기발하면서 서글픈 문구들이 눈에 띈다.

나로서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러나 어찌하랴. 이번 설 명절, 새로운 세모 세시가풍과 풍습을 만들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변화된 설날을 생각해 본다. 설날은 벌써 수십번 맞는데도 어린아이처럼 설레고 떨린다. 나의 설 준비는 세모 밑 친척 어른들과 고마운 분들께 안부전화나 문자를 하고 차례에 올릴 농·수산물 선물을 보내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새 달력이나 핸드폰에 1년간 중요한 행사·일정 등을 표시해 둔다.

섣달 그믐날에는 사업장에 고사 겸 제사를 지낸다. 지난 한 해 나와 우리가족·직원들 건강하고 월급이라도 가져갈 수 있게 해주어서 고맙고, 내년에도 무탈하고 경제적으로 어렵지 않게 복 많이 달라고 소원하며 감사의 제사를 드린다. 너무 구시대적이라고 이젠 하지 말자고 가족들이 만류하지만, 수십년을 해온 것을 버릴 수 없는 문제라 고민이 많다. 그믐날 저녁에는 정월 초하루 차례를 지낼 병풍과 제기·위패 등을 살펴보고 멥쌀을 떠서 정성스럽게 주방에 올려놓고 세뱃돈 받을 사람들 이름을 봉투에 써서 거실 진열장에 올려놓고 준비를 마친다.

이 일들을 마무리할 즘엔 선친의 모습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나이든 아들을 애처럼 바라보며 교훈을 주셨던 생전의 모습이 아련해진다. 선친의 말씀 중 우생마사(牛生馬死)라는 고사가 있다. '소는 살고 말은 죽는다'라는 뜻이다. 소와 말이 강에 빠지면 순위와 상관없이 둘 다 헤엄을 쳐서 빠져나오는데 말이 한 수 위라고 한다. 그런데 홍수가 져서 소와 말이 강에 빠지면 소는 헤엄쳐 나오고, 말은 나오지 못하고 죽는다고 한다. 수영실력이 뛰어난 말은 교만하게 강을 거슬러 헤엄을 치다 보면 강을 건너지 못하고 힘이 빠져 죽게 된다. 반면 소는 강물의 물살을 이기려 하지 않고 물살을 등지고 떠내려가면서 조금씩 바깥으로 헤엄쳐 강을 건너 강기슭에 다다라 엉금엉금 기어 나와 산다고 한다.

결국 겸손하고 순응하며 살아가라는 교훈의 말씀이셨다. 유독 올해 이 말씀이 생각나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진실과 정의는 끝내 이긴다는 진리와 같이 인내하고 소걸음처럼 묵묵히 걸어 가겠다는 새해 각오를 다지라는 가르침이라 여겨진다. 교만이 부르는 재앙과 앞선자를 향한 시기와 질투의 무서움을 일깨워 주려 하셨던 마음, 다시금 그리워진다.

올해 설은 묘제로 대신하고 차례는 가족 대표 5인 이하만 모여 차례를 지내면서, 세뱃돈도 세태에 맞게 주는 신식 큰아버지가 돼 보기로 했다. 가정마다 코로나19의 새로운 가풍을 만들어 보기를 권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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