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대혁명의 승리를 발판으로 집권한 급진좌파 로베스피에르(1758-1794)는 공포정치의 대명사다. 사법부까지 장악한 그는 정식재판을 받지 않고도 처형할 수 있는 법을 만들어 2만명 가까운 정적들을 죽인다. "왕은 무죄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를 무죄라고 선언하는 순간 혁명이 유죄가 된다"는 연설과 함께 국왕 루이16세도 단두대의 이슬이 된다.

혁명을 지지해준 농민과 노동자들을 위한 서민정책으로 "모든 프랑스 어린이들은 우유를 마실 권리가 있다"고 선포하면서 우유값을 반으로 내리게 했다. 귀족이나 부자가 아니면 먹을 수 없었던 우유를 서민들도 먹게 됐으니 사람들은 환호했다.

우유값은 폭락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낙농업자들은 젖소를 키워봤자 건초 값을 주고 나면 수지타산이 맞지 않으니 사육을 포기하기 시작했다. 로베스피에르는 건초 생산업자에게 건초값을 반으로 내리라고 지시했다. 그러자 농부들은 건초를 키워봤자 생산비도 못 건지니 밭을 갈아엎거나 불태워 버렸다.

결국 건초는 암시장이 형성돼 높은 가격에 거래됐고, 비싼 건초는 비싼 우유값에 반영돼 우유는 전보다 훨씬 더 비싸지고 말았다. 우유는 다시 잘 사는 귀족들의 음식으로 되돌아갔다. 평민들을 위한다고 시장(市場)에 개입해 가격을 통제한 결과였다. 전에는 그래도 갓난아이들에게는 먹일 수 있었는데 이제는 그조차 못하게 되자 국민들의 분노는 들끓었다. 삽시간에 로베스피에르의 인기는 추락했다.

정의라는 미명하에 온갖 전횡과 과격한 정책을 계속하던 로베스피에르는 새로운 쿠데타군에 의해 체포돼 루이 16세를 처형한 혁명광장의 그 단두대에서 자신도 정식재판 없이 죽음을 맞는 신세가 되고 만다.

시장을 안정시키겠다거나, 서민들을 위한다는 목적으로 국가가 시장 메커니즘을 인위적으로 간섭하거나 가격을 통제하면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온다는 역사적 교훈이 바로 '로베스피에르의 우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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