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진은 1971년 4월8일 거제대교가 개통 되고 난 몇 년 후 대교위에서 견내량 마을과 한남수산을 촬영한 모습.
이 사진은 1971년 4월8일 거제대교가 개통 되고 난 몇 년 후 대교위에서 견내량 마을과 한남수산을 촬영한 모습.

이 사진은 1971년 4월8일 거제대교가 개통 되고 난 몇 년 후 대교위에서 견내량 마을과 한남수산을 촬영한 것이다.

한남수산은 1965년 견내량을 건너는 거제대교가 착공되고 다리공사가 시작된 후 견내량 지역이 발전 될 것이라고 생각한 서모씨가 만들었다. 서씨는 호남에서 수산업을 하다가 미래 성장가능성이 높은 견내량 주변 덕호마을로 와서 수산물 가공공장을 시작했다.

마을에 가공공장이 생기자 어민들은 악취 등의 이유로 반대했다. 서씨는 마을사람들의 반대에 부딪혀 견내량 해안가로 와서 임시로 집을 지어 수산업을 계속했다. 거제대교 공사가 원만히 진행되는 것을 보고 육지와 교통이 연결되면 판매가 잘될 것이라 예상하고 바닷가에 이 공장을 지었다. 이 공장 건설공사는 거제 수월 출신으로 부산에서 신도산업을 경영하던 배석권씨가 맡았다.

거제대교가 개통될 시기에 수산물 통조림 가공공장을 했다. 이곳에 대규모 수산공장을 하게 된 것은 당시 경남수산국장을 하던 김태호씨의 도움이 컸다. 이곳에서 생산된 통조림은 일본 등으로 수출하기도 했고 국내에서도 판매됐다. 이로 인해 많은 일자리가 생겼고, 공장이 번성했다.

견내량 해안에 큰 공장이 생겼지만 주민들은 불편함이 많았다. 그때 사등면 오량초등학교가 견내량 덕호마을로 이전했다. 공장에서 나오는 비릿한 냄새가 마을과 학교를 덮치자 주민들의 항의가 이어졌고 공장 이설을 요구하는 여론이 많아졌다. 일본으로 수출하던 통조림 수출도 어려워져 공장을 폐쇄해야 할 단계에 이르자 덕호리 해안가로 공장을 이설했다.

주민 반대와 환경문제를 슬기롭게 해결하고 지금까지 이 수산물 통조림 가공공장이 유지됐더라면 지역경제에 보탬이 됐을 것이란 생각을 하면서 이곳을 지날 때마다 그때 그 시절이 회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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