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반만 만들어 먹었다는 '숭어국찜'
양반만 만들어 먹었다는 '숭어국찜'
  • 원순련 거제대학 겸임교수
  • 승인 2020.05.1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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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사람만 아는 거제의 맛3】 산나물과 버무려 먹는 '숭어국찜'
숭어두리로 잡고 산나물 뜯어 어머니 사랑 우려낸 추억의 음식
살 발라내 각종 산나물과 버무려 온 식구 모여 경단 빚어 끓여내
숭어국찜
숭어국찜

모든 사람들에게는 자기만이 간직하고 있는 다양한 추억이 있다. 살면서 경험했던 일 중 자기에게 특별한 의미로 다가오는 그 경험이 바로 그 사람만의 추억이 되는 것이다. 나는 그 많은 추억 중에서도 특히 어머니가 만들어 주셨던 유년의 음식들이 잊혀지지 않는다.

세상엔 맛있는 음식들이 참 많다. 신기하고 처음 보는 음식들도 많다. 그런데도 그 어려웠던 시절에 어머니께서 해 주셨던 그 계절에 먹었던 음식이 유독 생각나는 것은 그 음식속에 어머니의 사랑이 녹아있기 때문이 아닐까?

친정어머니의 음식중에 내가 잊지 못하고 있는 것이 바로 '숭어국찜'이다. 우리가 먹는 음식중에는 다양한 찜이 있다. 특히 거제도 음식 중에 봄이 되면 시골의 집집마다 즐겨먹었던 것이 산나물 멸치찜이었다. 바다에서 건져 올린 멸치를 잘 다듬어 산나물과 섞어 찜을 쪄서 먹는 것은 거제 사람이면 누구나 알고 있다.

멸치 산나물찜도 맛이 있었지만 그 시절 친정어머니가 만들어 주셨던 '숭어국찜'을 나는 잊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멸치 산나물찜은 다 알고 있지만 '숭어국찜'을 알고 있는 사람은 잘 보지 못했다. 또 '숭어국찜'을 만들어 파는 곳도 잘 보지 못했다.

봄이 되면 내가 살았던 일운면 앞바다에 팔뚝만한 숭어가 지천으로 나왔다. 숭어는 잡는 방법이 좀 특이했다. 정확한 용어로 어떻게 표현하는지 모르지만 우리는 '숭어두리'라고 불렀다. 숭어가 잘 지나가는 바다 목에 그물을 던져놓고, 언덕 위에서 숭어가 들어오는 것을 관찰하는 사람이 신호를 보냈다. 그물을 건지면 어김없이 그물 속엔 물 반, 숭어 반으로 수확이 올랐다. 그 숭어는 봄 한철 우리들의 밥반찬으로 대단한 역할을 해줬다.

내가 어릴 때 '숭어국찜'을 만들었던 과정이 지금도 생생해 소개하고자 한다.

먼저 봄이 되면 잎이 돋는 엄나무·두릅나무·화살나무·합다리 나물 등 다양한 여러 나물을 살짝 데쳐 물기를 짠 후, 촘촘히 다져 놓는다. 그리고 싱싱한 숭어를 잘 다듬어 양쪽 살의 포를 뜬 후 남아있는 숭어의 머리와 뼈를 무쇠 솥에 넣고 장작불로 육수를 만들었다. 육수가 만들어지는 동안 숭어의 포를 도마 위에 놓고 칼질해 듬성듬성 다져놓았다. 이때 너무 잘게 다지면 나중에 숭어맛이 제대로 나지 않기 때문에 숭어포는 듬성듬성 다져뒀다.

큰 양푼에 다진 숭어살과 다진 산나물을 담아 된장을 풀고 마늘 찧은 것과 소금으로 섞으면서 간을 맞춘다. 이렇게 숭어살과 산나물을 잘 섞어 간을 맞춘 후 콩가루와 찹쌀가루를 뿌려 반죽했다.

반죽이 다 되고 나면 가족끼리 둘러 앉아 숟가락으로 반죽을 조금씩 떠서 경단을 만들었다. 온 식구가 앉아서 숭어산나물 반죽을 경단으로 빚어놓으면  소쿠리에 한 가득 쌓이게 된다.

가족끼리 모여 경단을 다 빚을 때쯤이면 무쇠솥에서는 숭어뼈와 머리에서 육수가 나와 아주 맛난 국물이 끓고 있다.

육수에서 건더기를 모두 걸러내 맑은 숭어국물이 되면 조선간장으로 간을 한 후 만들어 뒀던 경단을 육수에 넣어 익힌다. 주걱으로 부지런히 저어가면서 익혀야 하는데, 이때 잘 젖지 않으면 경단이 터져버리거나 무쇠솥에 눌어붙게 되므로 단단히 조심하면서 경단을 저어줘야 한다.

무쇠솥에서 국찜이 소리를 내면서 보글보글 익는 소리가 나면 어머니는 경단을 건져서 시식을 먼저 하셨다. 간을 맞추기 위한 시식이기도 하지만 섣불리 건져내면 제법 알이 굵은 경단이 설익을 수가 있기에 경단을 몇 개씩 건져서 확인하셨다.

어린시절에 내가 본 '숭어국찜'은 국물이 노란 색이었다. 노란 국물에 채소와 숭어살이 어우러진 동글동글한 경단 덩어리가 듬뿍 들어있는 모습이었다.

옛날에는 가족이 보통 예닐곱은 넘었다. 국찜이 완성되면 제일 먼저 할아버지 상에 경단이 듬뿍 들어가도록 한 그릇을 담아드린 후, 나이든 어른의 순으로 국찜을 담아냈다. 우리들의 몫은 말이 국찜이지 경단이 겨우 서너 개 들어있는 그야말로 멀건 국물뿐이었다. 그래도 그 맛은 일품이었고 봄이 돼야 맛볼 수 있는 음식이어서 더 맛이 있었다.

나는 '숭어국찜'을 한 그릇 뜬 후 그 위에 방아잎을 몇 개 얹어서 할아버지 상에 올리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봄이면 꼭 그리워진다.

그런데 그 '숭어국찜'은 우리 마을 다른 분들은 한 번도 만들어 먹지 않았다. 내 기억에 '숭어국찜'을 어머니께서 만들게 되면 할아버지께서는 마을의 친구분들을 여럿 모시고 오셨다. 그리고 며느리가 만든 '숭어국찜'을 선보이시고 자랑을 하셨다.

어머니는 고향이 거제면 내간리다. 내가 살고 있는 옥림은 바로 바다와 접해 있어 어머니의 고향인 내간리보다 훨씬 생선음식을 더 많이 먹을 수 있는 조건이었다. 그런데도 옥림마을엔 '숭어국찜'이 없었다.

어린 기억에 어머니는 '숭어국찜'은 양반 음식이라고 했다. 그때 양반이 무엇인지도 몰랐던 시절이었지만 그 '숭어국찜'은 외할아버지께서 즐겨 드셨던 음식이고 외할아버지께서 '숭어국찜'이 양반음식이라고 하셨단다.

외할아버지께선 '거제향교'에 다니신다고 하면서 가끔씩 우리 집에 오시면 마당에 멍석을 깔아놓고 한시를 적으셨다.

그땐 향교가 어떤 곳인지 몰랐다. 향교는 조선시대 국가 주도의 학교 교육기관으로 성균관과 사(四)학이 있었고, 그 아래 지방에 설치된 유학교육기관으로 관립중등교육기관인 향교가 있었다. 그러다 보니 외할아버지께선 향교에서 글 읽는 사람들과 친분이 있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또 외할아버지께서 양반이 먹는 음식이라는 이야기를 어머니께 직접 해주셨다는 이야기도 머리에 남는다. 뿐만 아니라 거제·둔덕은 옛 폐왕성에서 흘러나온 다양한 문화가 전수됐던 것 같으니 그 '숭어국찜'도 행여 궁중음식은 아니었던가 하는, 순전히 혼자만의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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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칠임 2020-05-19 16:59:11
비오는 날 직접 시장가셔서 요리까지 해서 사진도 챙겨주셨습니다.
주신 글도
재미나게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