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제25대 평원왕의 어린 딸은 지독한 울보였다. 왕은 딸이 울 때마다 농담으로 "바보 온달에게 시집보낸다"고 했다. 공주가 자라 혼기가 차자 귀족인 상부 고씨 집 아들과 혼담이 오고갔다. 그런데 공주는 온달에게 시집가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실없이 내뱉었던 말이 씨가 돼 공주를 가난하고 무식했던 바보 온달에게 시집가게 된다.

우리는 너무 쉽게 말을 한다. 이야기 중에 무심코 말을 잘못하기 일쑤고, 속에 없는 말도 아무렇지 않게 하고, 책임지지 못할 말도 넙죽넙죽 잘한다. 세치의 혓바닥이 여섯자의 몸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 연산군이 대신들 입을 막으려고 함구령을 내릴 때 목에 채워준 물건이 신언패(愼言牌)이다. 나무로 만든 패쪽인데 거기에는 이런 글이 새겨져 있다. '입은 화의 문이요, 혀는 몸을 베는 칼이다. 입을 닫고 혀를 깊이 간직하면 몸이 편안하여 어디서나 안온하리라.'

말은 곧 사고이고, 철학이고 그 자신이다. 말의 품격에서 그 사람의 인품이 묻어난다. 조국 전 법무부장관에 대해 국민이 분노하는 것은 말과 행동이 이율배반적이었기 때문이다. 정의로운 사람인줄 알았더니 '못정의'했고, 공정한 사람인줄 알았더니 '안공정'했기 때문이다.

정치인은 정무적 감각이 뛰어나야 한다. 정무적 감각은 정무적 판단이며, 정무적 판단은 말로 읽힌다. '코로나19는 머지않아 종식될 것'이라는 대통령의 한마디에 여당대표는 '세계보건기구가 우리 정부에 코로나19 관련 자료를 요청할 정도로 우리 방역과 의료체계, 시민의식은 세계 수준'이라는 답가에 '한국이 세계에서 방역대책을 가장 잘한 모범생'이라고 정부와 여당이 용비어천가를 부를 때 28명이던 확진자가 이제는 2000명을 넘어섰다.

'대구봉쇄' 발언이나 '코로나19는 중국을 다녀온 한국여행객 탓'이라는 말이 가벼운 정치인에게 무얼 기대한다는 자체가 슬프다. 차라리 입이라도 다물고 있으면 우리 속이라도 덜 터질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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