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광복이후 남북이 분단됐다가 1950년 6월25일 남북전쟁이 일어난 후부터 생활환경이 너무나 어려웠다.

1968년 정부방침에 의해 어린이집이 생겼고, 1970년 2월 어린이집이 정부로부터 정식 인가를 받아, 초창기에는 탁아소(託兒所)라 불렸다.

1982년부터 마을마다 어린이들을 교육하는 '새마을 협동 유아원'이 생겼다.

이 사진은 장승포 새마을 협동 유아원 어린이들의 졸업식 장면이다. 새마을정신을 이어 받아 전두환 대통령 시절, 1981년부터 정책사업으로 새마을유아원 교육을 실시해 지역마다 새마을 협동 유아원을 운영했다.

이것이 바탕이 돼 정부는 1982년 3월26일 유아교육 진흥 종합계획을 수립했고, 1982년 12월31일 유아교육진흥법을 제정·공포했다.

이 법에 근거해 탁아시설들은 모두 통합돼 내무부에서 주관하는 새마을 유아원으로 명칭이 통일됐다.

새마을유아원은 유아교육진흥이라는 큰 목적하에, 유아의 교육과 보호를 동시에 충족시키는 시설이다. 특히 저소득층 취업모의 자녀를 위한 탁아기능을 담당한다는 목적으로 전국적으로 확대됐다.

1982년 당시 아동복지법의 시행령 중 탁아시설의 설치근거 조항이 삭제됐고 탁아시설인 어린이집은 관리자의 희망에 따라 사립유치원으로 전환하거나, 새마을유아원으로 바꿔 운영하도록 했다.

이후 어린이집이 전국에 691개소, 농번기탁아소 382개소, 새마을협동유아원 263개소, 민간유아원이 38개소 등 총 1374개소가 새마을유아원으로 통합됐다.

우리나라의 유아교육기관은 새마을유아원과 유치원으로 이원화됐다.

또한 그때까지 주무 부서였던 보건사회부의 모든 탁아시설 관련 업무는 내무부로 이관됐다.

이때는 어린이들이 부모의 품에서 자랄 때다. 새마을어린이유아원이 생기면서 시골 어린이들의 성장 과정이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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