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못 산다
나 혼자 못 산다
  • 김계수 칼럼위원
  • 승인 2020.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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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계수 칼럼위원

시내버스 정류장 아래 25시편의점 앞 5평 남짓한 '함양집' 식당이 헐리고 있다. 10년을 버텨온 동네 음식점이었는데 그 기둥이 무너진다. 건물을 리모델링해야 되겠다는 건물주의 한마디가 결정적인 원인이었지만, 일주일 전 술 취한 김씨가 다음날 조선소 일용직 일이라도 있었더라면, 일을 그만둔 박씨가 넘어져 병원에 실려가지만 않았더라면, 소주 한 병을 비울 때마다 높아지는 두 사람의 목소리를 좁다란 평상이 잡아줬더라면, '함양집'이 무너지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사람들은 전했다.

한참 잘 나가던 시절 주말 하루매출이 100~200만원 정도는 거뜬하게 올렸다는 돼지갈빗집 윤씨는 탁자와 불판·냉장고 등이 가득 실린 화물차에서 내려 3년동안 끊었던 담배를 다시 물었다.

15년 동안 한 자리에서 명맥을 이어오던 맛집이었는데 직장을 잃은 집주인의 아들이 화근이 됐다. 서울에서 내려와 할 일 없이 놀고 있으니 전세계약 기간이 지난 윤씨 식당을 비우라는 것이다. 상가임대차보호법은 이미 윤씨를 보호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권리금과 이사비용을 달라는 요구에 가게 원상복구를 하라고 되받아친다. 3개월간의 감정싸움 끝에 식당용품을 중고장터에 넘기고 떠나기로 했다. 집주인의 아들이 직장을 잃지만 않았더라면, 상가임대차보호법이 자영업자의 세세한 요구까지 들어주는 안전장치였더라면, 건물을 매입하라는 집주인의 말을 들었더라면 쫓겨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윤씨는 말했다.

컴퓨터수리 전문점 유리출입문 색이 점점 어둡게 변해갔다. 밖에서 보기에는 가게 내부에 사람이 있는지, 영업을 하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을 정도였다. 가끔 청년 두 명이 저녁 늦게 나오는 것이 목격됐을 뿐이다. 문을 연 것이 1년 전쯤 가을이었던가, 가게 안에서 들려오는 음악과 동네에 젊은 청년이 장사를 한다는 자체가 보기 좋아 컴퓨터 소모품을 사러 몇 번 들린 적이 있었다. '두 청년의 컴퓨터 이야기'라는 상호에 조명이 켜지지 않은 지 오래 됐다. 가게 안에서 두 청년은 종일 무엇을 하고 있을까 궁금하기도 했지만, 밀려오는 수리주문에 너무 바쁜 나머지 밖을 내다볼 여유가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에 이르러서야 가로등 불빛이 따뜻하게 어둠 속에 번지고 있었다.

얼어붙은 경기에 무너져 내리는 자영업자와 직장인들의 안타까운 사연들은 2019년 이전의 일이기를 바란다. 무엇보다 생활고로 한 가족이 상상하기도 싫은 나쁜 결정을 하는 안타까운 일이 제발 없어졌으면 한다. 어느 방송국의 '나 혼자 산다'라는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고 있다. 정말 유용하지 않은 오락물일 뿐이다. 나 혼자서는 잘 살 수 없는 일이므로.

2020년 새 날에 무엇을 바라는가. 무작정 재물만을 탐할 것인가. 바랄 것이 많아 떠오르는 새해 일출의 순간을 놓치기도 했는가? 희망은 선명하지 않고 어렴풋하고 가늘며 희미할 때 가장 근사한 것이 아니겠는가. 매년 바뀌는 세월과 시작점이 가져다주는 가늘고 희미한 희망들이 있기에 아팠던 함양댁과 김씨·윤씨·두 청년들이 새롭게 뭔가를 시작할 수 있기를 우리 사회가 함께 바라야 된다. 약간의 탐과 악이 세상에 존재해야 긴장을 유지하고 사회가 건강해진다는 의견에 동조하지는 않지만, 정치하는 사람들, 어쨌거나 돈 많은 사람들, 높은 자리 차지한 사람들이 조금만 탐과 악을 버려준다면 덜 아픈 2020년 시작점이 되지 않을까. 아니 우리 모두가 모두에게 그리 해주기를 바란다.

더러 낯선 사람의 품과 품에도 함부로 정이 들기도 하는 법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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